[사설] '국민과의 대화'가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생방송 소통하며 임기 후반 '공정·정의' 다짐했지만
한정된 시간에 여러 주제 망라해 깊은 대화 한계
분야별 전문가들과 대화 가져 '현장' 잘 수렴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서울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국민 패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오후 8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문 대통령이 생방송에 나와 정책 질의에 답한 것은 지난 5월 이후 6개월 만이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저녁 ‘국민 패널’ 300명과 함께 생방송에 출연해 ‘2019 국민과의 대화-국민이 묻는다’ 행사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과 국민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일관된 국정철학을 재확인했다.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남은 2년 반 임기 동안 따끔한 질책에 귀를 열겠다는 다짐도 내놨다.

청와대가 각본 없는 국민과의 소통의 장(場)으로 마련한 행사였지만 신변잡담과 원론적인 답변이 많아 한계가 분명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차별화된 장점으로 꼽히는 ‘타운홀 미팅’의 형식을 가져왔지만, 내용적으로는 그저그런 또 하나의 대통령홍보 행사였다. 시끌벅적할 정도로 격의 없이 토론을 벌이자는 타운홀 미팅의 취지와 달리, 제한된 시간과 준비 부족으로 심도있는 토론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고립무원의 외교·안보, 추락하는 경제, 심화되는 사회 갈등과 같은 엄중하고 답답한 현실이 충분히 논의됐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한·미 동맹, ‘조국 사태’, 수출 급감, 주52시간 근로제 강행 논란, 국민연금 개혁 등 당면한 굵직한 이슈에 대해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안 제시는 커녕 제대로된 논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자리 창출 하나만 해도 예정된 100분이 모자랄 판에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국민 패널들의 질문이 현안과 쟁점을 비켜가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맥없는 행사가 되고 말았다.

임기 전반부의 성과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에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의 목록만 훑어봐도 국정에 난맥상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적재적소 인사, 좋은 일자리 창출, 소상공인 역량 강화, 고부가 신사업 발굴,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 등의 100대 과제 중 제대로 실천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복기 없이 열심히 해서 임기 후반기에는 열매를 맺겠다는 식의 다짐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지난 1월에 가졌던 타운홀 미팅 방식의 ‘기업인과의 대화’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 또한 귀 기울여야 한다. 당시 대화는 ‘기업이 커가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4대 그룹 총수와 중견기업인 등 한국 대표 기업인 130여 명이 참여했고,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을 찾아보기 어렵고, 노동분야 등은 오히려 역주행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는 국민들이 품고 있는 수많은 걱정과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민 의견을 직접 청취하는 경청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던 만큼 단소리는 흘려듣고 쓴소리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대화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본격적인 통합과 소통 행보에 나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