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원전이 암 발병 유발했다는 건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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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옆에 살았더니 온 가족이 암에 걸리고 장애.”
수 년 전 공개된 한 연구보고서(안윤옥 서울대 교수팀)를 바탕으로 쏟아졌던 기사 제목 중 하나입니다.해당 연구진은 당시 ‘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사는 여성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보다 2.5배 높았다’는 결과를 내놨지요. 교육과학기술부(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991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20년간 원전 주변지역 1만1367명과 대조지역 2만4809명 등 총 3만617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역학조사를 근거로 했습니다. 다만 결론에선 “원전과 암 발병 사이에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전 주변지역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높았던 것은 맞지만 이것이 원전 때문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또 다른 연구 보고서(최진수 전남대 교수팀)에선, 전남 영광 원전 주변지역 거주민들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다른 전남지역 대비 2~5배,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놓고 전문가그룹, 시민단체, 정치권 등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반핵의사회, 환경운동연합 등은 “원전 주변 갑상선암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원전 종사자의 염색체 이상 빈도 역시 높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지요. 원전 주변 주민들은 청와대 앞에서 ‘이주비용을 지원하라’며 시위에 나섰습니다. 탈원전 정책의 주요 근거 중 하나로도 사용됐습니다.그런데 “원전 주변의 높은 갑상선암 발생률이 원전 때문”이란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분석이 최근 나왔습니다.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소개한 ‘2019년 고려대 석사 논문’(문헌 및 미디어에 나타난 한국에서의 갑상선암 과잉 진단에 대한 실태 및 의미, 조영중)에 따르면, 영광 원전 주변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던 건 조사 시점에 ‘조기 검진’을 대거 시행했던 영향이었습니다. 즉 당시 영광군 내에는 초음파 기기를 활용해 갑상선암을 조기 검진한 내과가 두 곳이었는데, 이 곳에서 ‘아무런 증상이 없던 갑상선암 초진’ 환자를 집중적으로 찾아냈다는 게 논문의 골자입니다.
갑상선암 급증이 ‘과잉 검진’의 결과라는 건 여러 논문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갑상선암 환자 발병률은 세계 평균의 10배나 되지만, 인구 10만명당 0.7명인 갑상선암 사망률은 세계 평균 수준에 그치지요. 별 의미없는 갑상선암 검진이 많다는 방증입니다. 2014년 안형식·김현정 고려대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 갑상선암의 검진과 진단율’이란 논문이 세계적인 의학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실렸는데 “한국에선 갑상선암 조기 검진 또는 과다 검진이 불필요한 수술·처방을 유도하고 있어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갑상선학회에선 초음파 검사 등으로 발견된 0.5㎝ 미만의 작은 혹에 대해선 추가 검사조차 필요없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의료보험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 국내에선 이런 혹조차 통째로 들어내는 수술이 잦습니다. 불필요한 수술로 인해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거나 부갑상선 기능 저하 등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안 교수팀의 보고서 내용입니다.이 보고서엔 더욱 흥미로운 결과도 있었습니다. 갑상선암만이 아닌, 전체 암을 대상으로 했을 경우 원전 바로 옆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발병률이 오히려 낮았던 겁니다. 원전 주변지역 남성의 암 발생률은 903.8이었지만, 대조군인 먼 지역 남성의 발병률은 1092.6으로 집계됐습니다. 여성의 암 발병률 역시 원전 주변 540.7, 대조군(먼 지역) 560.9로 확인됐구요. 원전 종사자의 경우 전체 8671명 중 207명에게서 암이 발생했는데, 대조군(9030명 중 298명 발병) 대비 50% 가까이 적은 숫자였습니다. 이를 놓고 ‘호메시스 효과’(독성이 있는 물질이라도 소량을 사용하면 오히려 생리활동 촉진 등 긍정적인 작용)가 아닌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과학적 사실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재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주지요. 원전에서 7.6km 떨어진 곳에서 20년 간 거주하다 온 가족이 암 질환을 앓게 됐다는 이모 씨는 2012년 “원전 때문에 암이 발병했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일명 균도네 소송)을 냈습니다. 당시 1심은 “원전과 박 씨 가족의 질병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요. 당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올해 8월 2심에서 뒤집혔습니다. 항소심은 “원전 인근 주민의 피폭선량이 규제치인 연간 1m㏜(밀리시버트)에 못 미치고, 한수원이 방사선 피폭을 일으켰다는 증거도 없다”며 기각했지요. 과학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수 년 전 공개된 한 연구보고서(안윤옥 서울대 교수팀)를 바탕으로 쏟아졌던 기사 제목 중 하나입니다.해당 연구진은 당시 ‘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사는 여성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보다 2.5배 높았다’는 결과를 내놨지요. 교육과학기술부(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991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20년간 원전 주변지역 1만1367명과 대조지역 2만4809명 등 총 3만617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역학조사를 근거로 했습니다. 다만 결론에선 “원전과 암 발병 사이에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전 주변지역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높았던 것은 맞지만 이것이 원전 때문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또 다른 연구 보고서(최진수 전남대 교수팀)에선, 전남 영광 원전 주변지역 거주민들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다른 전남지역 대비 2~5배,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놓고 전문가그룹, 시민단체, 정치권 등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반핵의사회, 환경운동연합 등은 “원전 주변 갑상선암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원전 종사자의 염색체 이상 빈도 역시 높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지요. 원전 주변 주민들은 청와대 앞에서 ‘이주비용을 지원하라’며 시위에 나섰습니다. 탈원전 정책의 주요 근거 중 하나로도 사용됐습니다.그런데 “원전 주변의 높은 갑상선암 발생률이 원전 때문”이란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분석이 최근 나왔습니다.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소개한 ‘2019년 고려대 석사 논문’(문헌 및 미디어에 나타난 한국에서의 갑상선암 과잉 진단에 대한 실태 및 의미, 조영중)에 따르면, 영광 원전 주변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던 건 조사 시점에 ‘조기 검진’을 대거 시행했던 영향이었습니다. 즉 당시 영광군 내에는 초음파 기기를 활용해 갑상선암을 조기 검진한 내과가 두 곳이었는데, 이 곳에서 ‘아무런 증상이 없던 갑상선암 초진’ 환자를 집중적으로 찾아냈다는 게 논문의 골자입니다.
갑상선암 급증이 ‘과잉 검진’의 결과라는 건 여러 논문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갑상선암 환자 발병률은 세계 평균의 10배나 되지만, 인구 10만명당 0.7명인 갑상선암 사망률은 세계 평균 수준에 그치지요. 별 의미없는 갑상선암 검진이 많다는 방증입니다. 2014년 안형식·김현정 고려대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 갑상선암의 검진과 진단율’이란 논문이 세계적인 의학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실렸는데 “한국에선 갑상선암 조기 검진 또는 과다 검진이 불필요한 수술·처방을 유도하고 있어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갑상선학회에선 초음파 검사 등으로 발견된 0.5㎝ 미만의 작은 혹에 대해선 추가 검사조차 필요없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의료보험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 국내에선 이런 혹조차 통째로 들어내는 수술이 잦습니다. 불필요한 수술로 인해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거나 부갑상선 기능 저하 등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안 교수팀의 보고서 내용입니다.이 보고서엔 더욱 흥미로운 결과도 있었습니다. 갑상선암만이 아닌, 전체 암을 대상으로 했을 경우 원전 바로 옆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발병률이 오히려 낮았던 겁니다. 원전 주변지역 남성의 암 발생률은 903.8이었지만, 대조군인 먼 지역 남성의 발병률은 1092.6으로 집계됐습니다. 여성의 암 발병률 역시 원전 주변 540.7, 대조군(먼 지역) 560.9로 확인됐구요. 원전 종사자의 경우 전체 8671명 중 207명에게서 암이 발생했는데, 대조군(9030명 중 298명 발병) 대비 50% 가까이 적은 숫자였습니다. 이를 놓고 ‘호메시스 효과’(독성이 있는 물질이라도 소량을 사용하면 오히려 생리활동 촉진 등 긍정적인 작용)가 아닌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과학적 사실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재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주지요. 원전에서 7.6km 떨어진 곳에서 20년 간 거주하다 온 가족이 암 질환을 앓게 됐다는 이모 씨는 2012년 “원전 때문에 암이 발병했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일명 균도네 소송)을 냈습니다. 당시 1심은 “원전과 박 씨 가족의 질병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요. 당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올해 8월 2심에서 뒤집혔습니다. 항소심은 “원전 인근 주민의 피폭선량이 규제치인 연간 1m㏜(밀리시버트)에 못 미치고, 한수원이 방사선 피폭을 일으켰다는 증거도 없다”며 기각했지요. 과학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