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연민과 공감 거부한 '강인한 여성들'

터프 이너프
“연민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초래한 원인과 공범자가 된다. 우리가 느끼는 연민이란 무기력이나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미국 출신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수전 손태그는 ‘연민’이란 감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손태그는 세상의 온갖 고통과 마주했을 때 여성의 미덕처럼 여겨진 연민과 공감이란 감정을 오히려 배제했다. 이를 스스로의 무력함을 즐기는 방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독일 태생인 유대인 철학자 해나 아렌트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아렌트는 “나는 한 번도 어떤 민족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다”며 “오직 친구들을 사랑할 뿐이며, 내가 알고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터프 이너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지식인의 비감상적이면서도 강인한 태도와 철학을 소개한다. 미국 시카고대 영문학과 교수인 데버라 넬슨이 썼다.

저자는 손태그, 아렌트와 함께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 미국 소설가 메리 매카시와 조앤 디디온, 미국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들 여섯 명은 단순히 ‘여성’이란 키워드로 묶이지 않는다. 고통을 대할 때 유독 강인한 태도를 가졌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이들은 인간의 고통과 세계의 상처를 격정적인 수사나 드라마에 기대 해소하려 하지 않았다. 아버스는 자신의 사진에 예기치 못한 순간이나 불편한 진실로서의 현실을 담기 좋아했다. 공감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카메라의 미학적 감정과 개인의 감정을 기술적으로 분리했다. 디디온은 “자기연민은 자기기만과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감상주의는 감각을 마비시켜 도덕적 결핍으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저자는 말한다. “공감이나 연민이란 감정은 종종 사실을 가릴 뿐 아니라 도덕적 만족감을 줘 올바른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한다. 감정 과잉과 냉정함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좁은 길을 걸었던 이 여성들은 현실의 고통에 맞서는 진정한 ‘터프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김선형 옮김, 책세상, 436쪽, 1만9000원)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