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까지 꺼낸 美…비건 "한미동맹 리뉴얼 필요, 힘든 협상 될 것"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2인자’인 부장관에 지명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현지시간) “한·미동맹 리뉴얼(갱신)” 필요성을 거론하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무부 청사에서 비건 대표와 면담 후 워싱턴특파원들과 만나 이같이 전했다. 3당 원내대표에 따르면 비건 대표는 한·미동맹과 관련해 ‘갱신(renewal)’, ‘원기회복(rejuvenation)’ 같은 단어를 써가며 방위비 증액 필요성을 설득했다. 특히 “한·미동맹이 6·25 이후 60년 넘게 지났지만 왜 한반도에는 여전히 평화가 있지 않고, 극단적 대치 상황인지 근본적 문제의식이 있다”며 “앞으로 역할 분담은 미국 혼자만의 역할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번 방위비 혐상에 대해 “과거 협상과는 다른, 어렵고 힘든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이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가 주한미군 주둔비만을 분담하도록 한 기존 한·미방위비분담금 협정(SMA)의 틀을 넘어, 한반도밖 미군의 전략자산 배치·운용 비용 등까지 포괄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미 행정부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부자 나라’라고 부르며 방위비 분담에서도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아툴 케샵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수석부차관보도 3당 원내대표와 면담에서 미국이 수십년간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할을 했으며, 1950년대와 2019년의 한국은 굉장히 다른 환경 아니냐며 방위비 증액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에는 미국에 없는 고속철도와 의료보험이 있지만 미국에는 없다”는 말까지 하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설득하려 했다고 3당 원내대표는 전했다. 미국 덕분에 다른 나라는 성장하면서 자국민을 위한 일을 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3당 원내대표는 “과도하고 무리한, 일방적 증액 요구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며 “한·미동맹의 정신에 기초해 서로 존중하는 바탕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건 대표를 비롯해 국무부 반응은 완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가세했다. 미 국방부가 이날 공개한 에스퍼 장관의 전날 베트남 방문 중 기자들과 대화록을 보면 그는 “나는 그들의 방위와 미군 주둔비 분담을 위해 더 기여할 돈을 갖고 있는 나라들에게 더 기여하라고 요구하는건 불합리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방위비 대폭 증액 압박에 따른 한·미 균열이 북한과 중국을 이롭게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것을 균열이라고 묘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럽 동맹들을 상대로 수십년간 방위비 분담을 향상하라고 압박해 왔으며 이는 아시아 동맹들에도 매우 명확히 말해온 것”이라며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게 해당한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에 내년도 방위비로 약 5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10억달러 가량)의 5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미국이 강력하게 연장을 요구해온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종료되면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분석된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