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문턱까지 갔던 지소미아…우여곡절 끝에 '기사회생'

1989년 첫 제안 이후 2012년 밀실처리 비난 속 체결 실패
2016년 北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에 '속전속결' 체결
韓, 日경제보복에 중단선언…종료 6시간 전 '극적 종료 연기'
한일 정부가 체결한 최초의 군사협정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한일 갈등 속에 폐기 문턱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연장됐다.2016년 11월 23일 체결된 지소미아는 우리 정부가 연장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23일 오전 0시를 기해 효력이 상실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2일 오후 지소미아 종료 6시간을 앞두고 정부가 협정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하면서, 비록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폐기처분' 운명에서 극적으로 벗어나게 됐다.

앞서 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그 이유로 안보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지난 8월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방침이 결정된 이후 협정 효력이 상실되기 하루 전인 이날까지 석 달 동안 한일 양국은 정상 간 환담을 비롯해 수면 위아래서 숨 막히는 협상을 이어왔다.

◇ 지소미아 3년간 30건 이상 정보 교류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2급 이하 군사 비밀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원칙들을 담고 있다.

상대국에서 받은 군사 비밀을 해당 국가에서도 비밀로 보호한다는 내용이 골자다.공유된 정보는 제3자 제공도 금지된다.

지소미아를 통해 양국이 정보를 교류한 건수는 많지 않다.

지소미아 체결 이후 올해 8월까지 총 30건의 정보를 교류했다.2016년 1건, 2017년 19건, 2018년 2건, 2019년(8월까지) 8건이다.

8월 이후에도 수건의 정보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환되는 정보 자체가 비밀이다 보니 한일 양측 중 누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대북 정보에 대한 비교 우위를 갖고 있고, 서로가 취약한 부분을 공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백두, 금강 정찰기를 통해 평양 이남에서 군사분계선(MDL)까지의 군사시설에서 발신되는 무선 통신을 감청하고, 각종 영상정보(시긴트·SIGINT)를 수집한다.

또 탈북자와 북·중 인접 지역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한 대북정보도 일본보다 우위를 가진 정보다.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6기와 1천㎞ 밖의 탄도미사일을 탐지 할 수 있는 레이더를 탑재한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천㎞ 이상의 지상 레이더 4기, 공중조기경보기 17, P-3, P-1 등 해상 초계기 110여대 등을 보유했다.

일본은 최첨단 정보수집 자산을 이용해 북핵·미사일 기술 제원 등을 지소미아에 따라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사적 효용과 별개로 지소미아는 한일을 넘어 한미일 안보 협력의 상징으로도 표현된다.

한 정부 당국자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단순한 협정 차원을 넘어 '양국 간 신뢰를 유지해주는 기재(器財·도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지소미아
지소미아가 체결된 날은 3년 전이지만, 지소미아의 연원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협정 체결을 먼저 일본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양국 간 다른 사안에 밀려 '유야무야' 됐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논의는 본격화됐다.

2012년 6월 협정 체결안이 국무회의 안건으로 통과됐지만, 국무회의 이전·이후 정부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밀실 추진' 논란이 제기돼 협정 체결이 무산됐다.

당시 민감한 군사정보를 일본과 공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국민적 반일정서도 상당했다.

이후 4년 뒤인 2016년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도발 상황에서 지소미아는 재추진됐다.

2016년 북한의 4, 5차 핵실험, 수십차례에 걸친 탄도미사일 발사는 한일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높였다.

이번에도 협상 체결 과정은 논란을 낳았다.

재추진을 선언한 지 27일 만에 일사천리식으로 체결되면서 '졸속 협상', '매국 협상'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서둘러 서명을 하다 보니 당시 가서명 과정에서 국방부 장관과 주한 일본대사가 서명 주체로 참여하는 기형적인 모습도 연출됐다.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는 2016년 11월 23일 지소미아에 서명하면서 그 장면을 비공개로 했다.

사진기자들은 이에 대해 협정이 밀약이 아닌 이상 비공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 체결 3년 만에 소멸 위기…종료 6시간 전 조건부 연장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되지만, 한일 양국 중 어느 쪽이라도 연장을 거부할 경우 종료된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올해 8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감행하면서 지소미아는 소멸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지난 8월 22일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한 만큼 안보와 직결된 군사정보를 교류하기 어렵다며 재연장 거부 의사를 밝혔다.

협정 재연장 시한을 불과 이틀 남겨둔 시점이었다.

정부는 일본이 수출 규제를 풀지 않으면 지소미아를 연장할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 행사에서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일본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며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군사정보는 공유하자고 한다면 모순되는 태도이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달 6일 기자회견에서 "수출규제 강화는 지소미아 협정과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한국 정부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의 양보 없는 대치국면에서 지소미아가 결국 폐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종료 6시간을 앞두고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정부는 이날 오후 올해 8월 일본에 전달한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했다.

수출규제 문제 해소를 위한 대화 등을 조건으로 지소미아 종료를 연기한 것이다.

지소미아의 극적 연장에는 미국의 '막후 조율'이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한미일 군사 협력의 핵심으로 보고 협정 유지를 강하게 압박해왔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1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이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것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소미아의 만료로 득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국방부는 "협정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에 따라서 현재와 같이 지소미아를 통한 양국 간 정보 교류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