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오페라극장 150년 역사상 첫 여성작곡가 작품 오른다

내달 8일 오스트리아 여성 작곡가의 작품 '올랜도' 세계 초연

150년 전 문을 연 이래 수많은 오페라 명작과 스타 가수들이 거쳐 간 오스트리아 빈오페라극장이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작곡가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음악의 도시 빈을 대표하는 이 극장에서 내달 8일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올가 노이비르트(51)가 작곡한 오페라 '올랜도'(Orlando)가 세계 초연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869년 개관한 빈오페라극장에서 여성 작곡가가 작곡한 오페라가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랜도'는 20세기 영국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여성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오페라로 옮긴 작품이다. 원작처럼 시간을 초월해 남성과 여성을 넘나드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 사회의 이분법적인 고정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30세 남성 올랜도로 시작한 소설은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1928년 36세의 여성이 된 올랜도의 이야기로 막을 내려 전통적인 전기의 틀을 뛰어넘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노이비르트는 원작의 이야기를 현 시대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각색해 19장의 오페라로 재탄생시켰다.
15살에 처음 읽은 이 작품에 매료됐다고 밝힌 노이비르트는 빈오페라극장에서 최근 열린 리허설에서 "아름답고, 탁월하고, 다소 구식인 빈오페라극장을 정말이지 개혁하고 싶다"며 공연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노이비르트는 "이 작품은 성별의 바뀜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모든 이분법적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올랜도는 모든 종류의 이원성을 의심하고, 삶과 예술 사이의 중간 상태에 대한 각성을 경험하는 뛰어난 인간"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이 작품은 표현의 자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주인공 올랜도의 어린 시절 배역으로는 미국 출신의 트렌스젠더 카바레 클럽 가수인 저스틴 비비언 본드가 발탁돼 전통적인 오페라 훈련을 받은 성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작곡뿐 아니라 대본, 연출, 의상 등 작품의 주요 제작자로 여성이 대거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영국 출신의 폴리 그레이엄이 작품 총연출을 맡았고, 의류업체 꼼데가르송의 설립자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일본 출신의 레이 가와쿠보가 출연진이 입는 의상을 책임진다.

주로 비련의 여성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등 오페라는 남녀평등에 있어서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예술 장르로 분류되지만, 최근에는 여성 작곡가들과 연출가들에게 문턱을 점차 낮추는 등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빈오페라극장과 함께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로 꼽히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는 2016년에 약 10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이 탄생시킨 오페라 작품 '라무르 드 루엥'(L'amour de loin)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가 작곡했다.

영국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 역시 전통적인 오페라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 좀 더 많은 여성 연출가와 제작진을 참여시키겠다고 최근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빈오페라극장이 고수해온 여성 작곡가에 대한 '금녀의 문'의 빗장을 활짝 연 노이비르트는 "내가 30년 전 음악 공부를 시작한 이래 여성 작곡가를 위한 기회는 점점 확대돼 왔지만, 주요 공연장에서 새로운 음악을 올리는 것에 대한 투자와 위험을 감수하려는 시도는 거꾸로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오페라 극장들은 불행히도 '박물관'이 되고 있다"며 "도전적인 음악과 현대적인 주제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현대 작곡가들을 신뢰하는 분위기는 1970년대보다 훨씬 퇴조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앞서 빈오페라극장은 2004년 노이브리트에게 작품을 의뢰했으나, 나치 의사에 의한 아동 학대를 주제로 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쓴 대본을 극장 측이 거부하면서 공연이 무산되기도 했다.

한편, 노이비르트는 "계속 반복해서 똑같은 작품만 들으려 하는 상당히 보수적인 빈의 관객들이 '올랜도'와 내 음악의 기묘한 여정에 마음을 열지 모르겠다"며 염려도 털어놓았다.

그의 걱정처럼 '올랜도'에는 주인공과 주제뿐 아니라, 음악 자체에도 전통적인 관객의 입맛에 맞추기 힘든 요소가 등장한다.

오케스트라석에는 오페라 반주를 맡는 전통적인 관현악 악기들과 더불어 전자 기타, 신디사이저가 등장하고, 바이올린 파트는 표준보다 음을 낮춰 현을 조율하는 식이다. 노이비르트는 "규범을 의문시하고, '우리가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는 작업은 소리 자체로부터 이미 시작된다"며 "모든 것이 복합장르, 유동적인 형태에 대한 것이며, 모든 이들은 자기 그림자를 뛰어넘고, 관습을 탈피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작품의 취지를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