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올해 전망 다 틀렸는데"…또 등장한 '상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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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 연구자들이 어제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을 찾았습니다. 이날 발간한 ‘2020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죠. 내년 경제가 어떤 흐름을 보일지, 업종별 동향이 어떨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만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주식 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민생’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기자설명회 도중 보고서에 숫자가 잘못 기재된 게 발견됐습니다. 내년 수출 전망치가 어떤 항목에선 2.3%로, 다른 항목에선 2.5%로 각각 다르게 써 있었지요. 산업연구원은 “내년 수출 증가율 전망치는 2.5%가 맞다”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초 증가율을 2.3%로 봤는데 다른 변수를 대입해 2.5%로 상향 조정했다”고 했지요. 또 다른 관계자는 “원래 내년 수출 증가율을 2.1%로 예상했는데 몇 번의 조정 과정에서 2.5%로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즉 내년 수출 증가율 전망치가 ‘2.1%→2.3%→2.5%’로 단기간 계속 바뀌었다는 겁니다. 수출은 2년 넘게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경제의 회복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인자(factor)입니다. 내년 전망치를 ‘희망적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청와대나 정부 입김이 작용했는 지를 묻자 연구원 측은 “그런 건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지요.
이 연구원은 내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2.3%로 예측했습니다.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은 수준입니다. 앞서 정부는 내년에 2.2~2.3% 이상의 성장률을 꼭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지요. 정부 목표와 묘하게 숫자가 일치합니다. 골드만삭스(2.1%) 무디스(2.1%) 모건스탠리(2.1%) 대신증권(2.1%) 등 민간 예측기관들의 내년 전망치보다 높은 수치이구요.
산업연구원은 이제 1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올해 성장률도 새로 추산했습니다. 작년 말 2.6%는 될 거라고 했다가 올 6월 2.4%로 낮췄고, 이번에 2.0%로 대폭 수정했지요. 경기가 하강하자 이에 맞춰 수치를 낮춰온 겁니다. 최신 추정치 역시 “2.0%만큼은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정부 희망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옵니다.반면 민간 연구기관들은 올해 2.0% 성장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분기 충격의 ‘마이너스 성장’(-0.4%·전 분기 대비) 후 2분기에 반등했지만 3분기엔 0.4%에 그쳤습니다. 정부 목표인 연 2.0%를 달성하려면 4분기에만 최소 1% 성장해야 하는데, 지금 추세로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정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정부 돈 풀기’를 11~12월에 집중하고 있지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내년 상반기 예산 중 일부라도 앞당겨 올해 안에 집행하라”고 독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럼 내년 상반기엔 어떻게 될까요.(혹자는 내년 상반기엔 하반기 예산을 끌어다 쓸 걸로 예상합니다.)
산업연구원는 내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1년 전과 똑같이 ‘상저하고’를 꺼내들었습니다. 내년 상반기엔 지금과 같은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겠지만 하반기 들어 개선될 것이란 예상입니다. 안타깝지만 올해는 모든 상황이 정반대로 흘렀습니다. 경기 침체가 심화했고 계속 수정치를 내놔야 했지요. 상저하고를 기대하며 상반기에 재정을 집중 투입한 탓에 하반기 예산이 부족해졌습니다.현 정부 들어 성장 잠재력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는 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IMF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2017년 3.8%에서 작년 3.6%로, 올해 3.0%로 각각 낮아졌다가 내년엔 3.4%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성장률은 2017년 3.2%로 세계 성장률과 0.6%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았는데, 작년 2.7%로 0.9%포인트, 올해 2.0%(정부 전망치)로 1.0%포인트 벌어졌습니다. 내년엔 우리 정부의 ‘장밋빛’ 전망치로도 세계 성장률 대비 1.1%포인트 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그동안 수 차례 강조해온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등을 감안해도 성장하락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산업연구원엔 100명 가까운 경제학 박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전문 연구기관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기자설명회 도중 보고서에 숫자가 잘못 기재된 게 발견됐습니다. 내년 수출 전망치가 어떤 항목에선 2.3%로, 다른 항목에선 2.5%로 각각 다르게 써 있었지요. 산업연구원은 “내년 수출 증가율 전망치는 2.5%가 맞다”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초 증가율을 2.3%로 봤는데 다른 변수를 대입해 2.5%로 상향 조정했다”고 했지요. 또 다른 관계자는 “원래 내년 수출 증가율을 2.1%로 예상했는데 몇 번의 조정 과정에서 2.5%로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즉 내년 수출 증가율 전망치가 ‘2.1%→2.3%→2.5%’로 단기간 계속 바뀌었다는 겁니다. 수출은 2년 넘게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경제의 회복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인자(factor)입니다. 내년 전망치를 ‘희망적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청와대나 정부 입김이 작용했는 지를 묻자 연구원 측은 “그런 건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지요.
이 연구원은 내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2.3%로 예측했습니다.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은 수준입니다. 앞서 정부는 내년에 2.2~2.3% 이상의 성장률을 꼭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지요. 정부 목표와 묘하게 숫자가 일치합니다. 골드만삭스(2.1%) 무디스(2.1%) 모건스탠리(2.1%) 대신증권(2.1%) 등 민간 예측기관들의 내년 전망치보다 높은 수치이구요.
산업연구원은 이제 1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올해 성장률도 새로 추산했습니다. 작년 말 2.6%는 될 거라고 했다가 올 6월 2.4%로 낮췄고, 이번에 2.0%로 대폭 수정했지요. 경기가 하강하자 이에 맞춰 수치를 낮춰온 겁니다. 최신 추정치 역시 “2.0%만큼은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정부 희망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옵니다.반면 민간 연구기관들은 올해 2.0% 성장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분기 충격의 ‘마이너스 성장’(-0.4%·전 분기 대비) 후 2분기에 반등했지만 3분기엔 0.4%에 그쳤습니다. 정부 목표인 연 2.0%를 달성하려면 4분기에만 최소 1% 성장해야 하는데, 지금 추세로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정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정부 돈 풀기’를 11~12월에 집중하고 있지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내년 상반기 예산 중 일부라도 앞당겨 올해 안에 집행하라”고 독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럼 내년 상반기엔 어떻게 될까요.(혹자는 내년 상반기엔 하반기 예산을 끌어다 쓸 걸로 예상합니다.)
산업연구원는 내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1년 전과 똑같이 ‘상저하고’를 꺼내들었습니다. 내년 상반기엔 지금과 같은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겠지만 하반기 들어 개선될 것이란 예상입니다. 안타깝지만 올해는 모든 상황이 정반대로 흘렀습니다. 경기 침체가 심화했고 계속 수정치를 내놔야 했지요. 상저하고를 기대하며 상반기에 재정을 집중 투입한 탓에 하반기 예산이 부족해졌습니다.현 정부 들어 성장 잠재력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는 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IMF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2017년 3.8%에서 작년 3.6%로, 올해 3.0%로 각각 낮아졌다가 내년엔 3.4%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성장률은 2017년 3.2%로 세계 성장률과 0.6%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았는데, 작년 2.7%로 0.9%포인트, 올해 2.0%(정부 전망치)로 1.0%포인트 벌어졌습니다. 내년엔 우리 정부의 ‘장밋빛’ 전망치로도 세계 성장률 대비 1.1%포인트 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그동안 수 차례 강조해온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등을 감안해도 성장하락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산업연구원엔 100명 가까운 경제학 박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전문 연구기관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