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3법 막은 국회, 미래도 막았다"

자동폐기 위기에 기업들 분노

"세계는 이미 데이터산업 올인
우리는 시작도 못하고 발목"

與野 29일 처리 합의했지만
상임위 문턱도 못 넘어 '난망'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26일 세종대로 대한상의회관에서 개최한 '데이터 3법 입법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에도 불발이다. 비쟁점 법안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의 처리를 약속했던 국회 얘기다.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데이터 3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각각의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 3법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국회만 바라보고 있는 기업인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배경이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6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데이터 3법 처리를 미루고 있는 국회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는 우려가 나올 때 국회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젊은이들을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해달라” “각 당 대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등 직설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박 회장은 “‘데이터산업은 미래 산업의 원유’라고 하는데, 지금은 원유 채굴을 막아놓은 상황”이라며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어떻게 미래 산업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아득한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이미 규제를 풀어서 앞서가는데, 우리는 데이터 산업의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 개최를 결정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 의결이 무산되자 박 회장이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는 미래산업 원유…채굴 막다니"
박용만 상의 회장, 국회 정면 비판데이터 비즈니스를 준비해온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절박하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최근 간담회에서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유출한 기업이 있으면 영업이익 이상의 범칙금을 물게 하면 된다”며 “위험하니 안 된다고 묶어놓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유럽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 중인 업체들은 하루가 급하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개인의 신분을 알아보기 힘들도록 처리한 가명정보의 개념과 처리방식을 명시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연합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최성진 대표는 “데이터 3법의 통과 없이는 EU(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 GDPR이 지적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이대로 GDPR 유예기간이 끝나면 유럽 서비스를 중단하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기업들이 데이터 3법의 국회 통과에 목을 매는 것은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의 근간이 데이터기 때문이다.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적으면 클라우드를 도입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알고리즘을 짠 뒤 방대한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으면 AI 비즈니스는 식물상태가 된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라며 ‘IT 강국’을 넘어 ‘데이터 강국’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현재 한국에선 데이터를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개인의 신분을 드러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데이터는 수집과 가공이 불가능하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하고 있다. 본인 동의 없이 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송형석/도병욱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