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있는 '샌드박스'마저 없어질라…공무원 '갑질'에 냉가슴 앓는 경제계

현장에서

황정수 산업부 기자
관료들은 종종 ‘그립을 강하게 쥔다’란 말을 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강력하게 장악한다는 것을 골프 클럽의 그립을 잡는 것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식의 발언도 그립 문화의 단면으로 평가된다.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해서도 ‘강한 그립’의 그림자가 짙다. 경제계 관계자에게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문제점을 묻자 “괜히 (공무원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대기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경제단체 등 소속은 달라도 걱정은 비슷했다. ‘관은 원래 규제하는 곳’이란 민간의 뿌리 깊은 인식 영향도 크다. 많은 기업인은 규제 샌드박스 등 일련의 규제혁신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걸어 공무원이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승인 기간 이후 사업 지속 여부가 공무원에게 달려 있는데 어떻게 ‘싫은 소리’를 대놓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민간의 인식이 왜곡된 것은 아니었다. 힘의 원천인 ‘규제 권한’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심의 과정에서 몸부림치는 일부 공무원의 행태에 기업인들은 안타까워했다. 이익단체, 협회를 조종해 혁신사업을 주저앉히는 공무원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 단체의 한 관계자는 “농어촌 민박이나 이동식 장례 서비스, 폐차 중개 등의 사업이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심의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강한 반발 탓이 크다”며 “관계단체 등을 움직이는 건 결국 공무원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그립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립을 강하게 쥐고 골프 클럽을 휘두르면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힘을 적당히 빼야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 정책도 비슷하다. ‘관치의 시대’에는 강한 그립이 자랑이었을지 모르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적당한 그립으로 민간이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게 ‘관료의 미덕’인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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