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대신 상상리더·행복책임자·지킴이…경영자들 이색 직함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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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적인 대표이사서 탈피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공학기술용 소프트웨어업체 마이다스아이티. 이형우 창업자는 올해 초 대표이사 직함을 떼고 ‘CHO(Chief Human & Happiness Officer)’로 바꿨다. 번역하면 ‘사람과 행복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다. 포스코건설에서 20년 전 독립해 회사를 차린 그는 “지난 20년이 창업과 학습의 시대였다면 미래는 도약과 부흥을 이루는 집단경영 시대가 될 것”이라며 회사 조직과 경영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없는 회사’란 그의 선언은 이 같은 변화의 시작이다. 대표이사인 정승식 수석부사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란 직함을 달고 있다.
경영 철학과 직결된 직함
이 회사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모두가 CEO라는 의미”라며 “집단지성을 통해 시너지를 내기 위해선 조직이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해 이에 맞춰 조직체계도 새로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 CHO는 인력 채용과 육성, 면접, 면담, 전략코칭 등 인사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중견·중소기업 창업자나 실질적인 오너들은 대외적으로 ‘회장, 사장 혹은 CEO’란 타이틀을 단다. 최근 들어 CEO 대신 새로운 타이틀을 단 기업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CEO의 역할과 조직에 변화를 주기 위한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조직 능동성·자율성 강조 위한 결정
이스온은 경북 포항에 있는 정보통신기술 기반 보안업체다. 김응욱 창업자는 자신의 명함에 대표 대신 ‘상상리더’라는 직함을 새겨 넣었다. 그는 “남들이 안 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내는 게 내 역할이어서 상상리더라는 명칭을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사다리가 필요 없는 승·하강식 폴(기둥)인 ‘아트폴’을 공급하고 있다. 최고 30m 높이에 설치하는 폐쇄회로TV(CCTV)용 폴이다. 지상에서 조립한 뒤 엘리베이터 원리를 이용해 높은 곳으로 올려보낸다.
공대 출신인 김 상상리더는 30여 년간의 현장 경험과 상상력을 결합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드론 격납고 역할을 하는 첨단 스테이션’이다. 2021년 상용화가 목표인 이 스테이션은 지상 10~20m 상공에 설치하는 드론 격납고다. 급속충전 시설, 이상 유무 점검 기능 등을 갖추게 된다는 설명이다.건물 관리·청소 용역 등 아웃소싱업체인 삼구아이앤씨 구자관 창업자의 호칭은 ‘책임대표사원’이다. 그는 “아웃소싱업체의 특성상 사원들이 다른 회사에 가서 일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고를 내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아예 직함을 책임대표사원으로 명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장사를 했다. 1968년엔 사원 2명으로 아웃소싱업체를 창업했다. 아웃소싱업체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 진입 장벽이 낮고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삼구아이앤씨는 큰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했다. 모든 책임은 대표가 진다는 CEO의 경영철학과 철저한 서비스정신이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달라지는 최고경영자 역할화장품을 만드는 원페이스의 김용회 대표는 명함에 최고경영자 대신 ‘지킴이’라고 표기했다. ‘회사와 직원, 사람들의 피부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한국화장품 한불화장품 등에서 근무한 김 대표는 2009년 원페이스를 창업해 차별화된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기적의 나무’로 불리는 모링가 추출물로 개발한 크림을 국내 최초로 출시해 소비자들에게 ‘인생 크림’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10만 개 이상 팔았다. 그는 “화장품 시장은 실력 있는 중소기업에 가능성의 땅”이라며 “피부지킴이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독특한 직함은 기업인들의 경영철학과 지향점을 반영한다. 과거엔 최고경영자가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경영이 복잡해지고 경영자 역할도 점차 변하고 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최고경영자의 지향점을 명확히 하는 게 기업 구성원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며 “종업원 행복 추구를 주된 경영철학으로 삼는 독일 중견·중소기업처럼 국내에서도 최고경영자의 다양한 시도가 사원들의 창의성을 발현시켜 좋은 경영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김정은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