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마약 보고서]⑦(끝)"나도 정상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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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팀 = "000씨, 마약 투약 및 구매 혐의 사건 상고 기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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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몰아친 2020학년도 대학입학 수능시험일. 대법원이 송달한 봉투가 A씨에게 전달됐다. 마약 사건 상고심 기각 판결이었다.
A씨는 올해가 가기 전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
마약 사범인 그에게는 가석방도 허용되지 않는다. 올해 37살인 그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건 3년 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법은 너무 미래가 없다고 그래야 하나요.
그냥 판결을 이렇게 해버리니까 한순간에 인생이…"
A씨가 기자를 만난 날은 3년의 징역형 집행유예 취소가 확정된 다음 날이었다. 그는 2017년 9월 대만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 2g을 밀반입하려다가 적발돼 징역 3년을 받았다.
다만, 법원은 당시 초범이던 그의 형 집행을 4년간 유예해줬다.
그런데 집행유예 기간에 그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인터넷을 통해 마약을 사 투약했다가 붙잡혀 올해 1년 4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징역형이 너무 과하다며 대법원에 상고도 했지만 기각됐다.
상고 기각과 함께 처음 마약 밀반입 당시 내려졌던 형 집행유예도 취소돼 3년을 더 옥살이해야 하는 그는 이제 절망하고 있다. A씨는 범죄의 길로 빠졌던 순간 누군가 자신을 도와줬더라면 '정상 궤도'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상황이 억울하다고 했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다른 투약자나 판매·공급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형량을 가볍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초범이었던 그는 협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저는 뭐 불 사람도 없었어요.
마약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검찰은 제가 협조를 안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만약 '협조'를 잘했다면 징역형 대신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었고, 벌금형을 받았다면 집행유예 취소로 추가로 수감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찰이나 검찰 실적을 올려주면 돼요.
그러면 (재판 서류에) 잘 올라가요.
그럼 판사가 그걸 보고서 결정을 하기 때문에 마약 전문가일수록 더 빨리 나와요.
발을 덜 담근 사람일수록 손해죠." 또 그는 제대로 된 치료와 재활 기회도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법원의 명령으로 40시간의 '약물치료'를 받고 사회봉사까지 했지만, 약을 끊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 모아놓고 마약에 관해 설명을 해줘요.
그런데 그건 우리도 다 아는 내용이에요"라며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그냥 시간 보내는 그런 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A씨는 실망감 때문에 교육 중에 '은밀한 도발'도 했다고 한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요양원 봉사 가서 대마를 피우기도 했어요.
옥상에서 몰래."라고 했다. 구치소 상황도 약을 끊거나 재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고 느꼈다.
A씨와 구치소 수용실에서 같은 방을 쓴 8명은 모두 마약 사범이었다.
A씨는 이들에게서 수면제나 신경정신과 약으로 마약류 효과를 내는 방법을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 정신과 약을 접했는데 그 방에서는 다들 먹더라고요.
수면제도 먹고. 보통 약을 깨서 흡입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알게 된 감방 동기들은 그에게 수시로 투약을 권했다고 한다.
애초에 마약사범들과 분리돼 수감됐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했다.
"그 사람들하고 저하고 좀 분리가 되었다면 제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완전히 끊을 수 있었을 텐데. 저는 마약을 구할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구하는 방법이 너무 많아요.
판매자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됐죠" A씨는 자신이 소위 '약쟁이'가 됐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살면서 신호 위반 딱지 한 번 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완전 범죄자가 돼버린 거죠. 전과자가 돼버리고."
그는 북미와 유럽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다녔다.
대학 졸업 전에는 국내로 돌아와 병역 의무도 이행했고, 입사 경쟁이 치열하다는 공기업에서 인턴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엔 유럽과 한국에서 대형 금융기업에 재직했다.
외국어 실력을 살려 무역업체도 운영했다.
촉망받는 젊은이였다고 한다. 필로폰을 접한 건 2015년 '친한 형'과 함께 태국 여행을 갔을 때다.
처음엔 필로폰인 줄 모르고 권하는 대로 투약했다가 중독이 될 즈음 필로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고 한다.
밀린 일을 하기 위해 약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필로폰의 뜻이 라틴어로 '일을 사랑한다'는 뜻이잖아요.
핑계일지 몰라도 일이 밀렸을 땐 낮 12시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가서 호텔 방에 틀어박혀 마약을 흡입하고 이틀간 잠을 자지 않은 채 일만 한 경우도 있었어요"
결국 그는 중독자가 됐고 밀반입 시도와 인터넷 구매 등으로 전과자 딱지가 붙었다.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3년 더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에 응하는 조건으로 이름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숨겨달라고 요구했다.
형이 확정되면서 삶이 파탄이 났지만 그래도 출소 후의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범죄자가 돼버려서 일도 그렇고 이제는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데 대한 두려움도 커졌어요. 40대에 교도소에서 나와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매일 그 걱정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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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몰아친 2020학년도 대학입학 수능시험일. 대법원이 송달한 봉투가 A씨에게 전달됐다. 마약 사건 상고심 기각 판결이었다.
A씨는 올해가 가기 전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
마약 사범인 그에게는 가석방도 허용되지 않는다. 올해 37살인 그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건 3년 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법은 너무 미래가 없다고 그래야 하나요.
그냥 판결을 이렇게 해버리니까 한순간에 인생이…"
A씨가 기자를 만난 날은 3년의 징역형 집행유예 취소가 확정된 다음 날이었다. 그는 2017년 9월 대만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 2g을 밀반입하려다가 적발돼 징역 3년을 받았다.
다만, 법원은 당시 초범이던 그의 형 집행을 4년간 유예해줬다.
그런데 집행유예 기간에 그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인터넷을 통해 마약을 사 투약했다가 붙잡혀 올해 1년 4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징역형이 너무 과하다며 대법원에 상고도 했지만 기각됐다.
상고 기각과 함께 처음 마약 밀반입 당시 내려졌던 형 집행유예도 취소돼 3년을 더 옥살이해야 하는 그는 이제 절망하고 있다. A씨는 범죄의 길로 빠졌던 순간 누군가 자신을 도와줬더라면 '정상 궤도'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상황이 억울하다고 했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다른 투약자나 판매·공급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형량을 가볍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초범이었던 그는 협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저는 뭐 불 사람도 없었어요.
마약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검찰은 제가 협조를 안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만약 '협조'를 잘했다면 징역형 대신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었고, 벌금형을 받았다면 집행유예 취소로 추가로 수감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찰이나 검찰 실적을 올려주면 돼요.
그러면 (재판 서류에) 잘 올라가요.
그럼 판사가 그걸 보고서 결정을 하기 때문에 마약 전문가일수록 더 빨리 나와요.
발을 덜 담근 사람일수록 손해죠." 또 그는 제대로 된 치료와 재활 기회도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법원의 명령으로 40시간의 '약물치료'를 받고 사회봉사까지 했지만, 약을 끊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 모아놓고 마약에 관해 설명을 해줘요.
그런데 그건 우리도 다 아는 내용이에요"라며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그냥 시간 보내는 그런 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A씨는 실망감 때문에 교육 중에 '은밀한 도발'도 했다고 한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요양원 봉사 가서 대마를 피우기도 했어요.
옥상에서 몰래."라고 했다. 구치소 상황도 약을 끊거나 재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고 느꼈다.
A씨와 구치소 수용실에서 같은 방을 쓴 8명은 모두 마약 사범이었다.
A씨는 이들에게서 수면제나 신경정신과 약으로 마약류 효과를 내는 방법을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 정신과 약을 접했는데 그 방에서는 다들 먹더라고요.
수면제도 먹고. 보통 약을 깨서 흡입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알게 된 감방 동기들은 그에게 수시로 투약을 권했다고 한다.
애초에 마약사범들과 분리돼 수감됐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했다.
"그 사람들하고 저하고 좀 분리가 되었다면 제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완전히 끊을 수 있었을 텐데. 저는 마약을 구할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구하는 방법이 너무 많아요.
판매자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됐죠" A씨는 자신이 소위 '약쟁이'가 됐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살면서 신호 위반 딱지 한 번 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완전 범죄자가 돼버린 거죠. 전과자가 돼버리고."
그는 북미와 유럽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다녔다.
대학 졸업 전에는 국내로 돌아와 병역 의무도 이행했고, 입사 경쟁이 치열하다는 공기업에서 인턴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엔 유럽과 한국에서 대형 금융기업에 재직했다.
외국어 실력을 살려 무역업체도 운영했다.
촉망받는 젊은이였다고 한다. 필로폰을 접한 건 2015년 '친한 형'과 함께 태국 여행을 갔을 때다.
처음엔 필로폰인 줄 모르고 권하는 대로 투약했다가 중독이 될 즈음 필로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고 한다.
밀린 일을 하기 위해 약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필로폰의 뜻이 라틴어로 '일을 사랑한다'는 뜻이잖아요.
핑계일지 몰라도 일이 밀렸을 땐 낮 12시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가서 호텔 방에 틀어박혀 마약을 흡입하고 이틀간 잠을 자지 않은 채 일만 한 경우도 있었어요"
결국 그는 중독자가 됐고 밀반입 시도와 인터넷 구매 등으로 전과자 딱지가 붙었다.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3년 더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에 응하는 조건으로 이름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숨겨달라고 요구했다.
형이 확정되면서 삶이 파탄이 났지만 그래도 출소 후의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범죄자가 돼버려서 일도 그렇고 이제는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데 대한 두려움도 커졌어요. 40대에 교도소에서 나와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매일 그 걱정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