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거래비용 낮춰야 경제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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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유연화 등현대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규명한 사람은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널드 코스다. 그는 1937년에 기업의 존재 이유를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각종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수집이나 협상 등과 관련한 비용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거래비용 낮추기' 경쟁서
거꾸로 가는 한국
'상생법' 개정안이 대표적
"경제 살리자" 말만 말고
비용 줄이는 정책 도입해야
권태신 <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
기업은 거래비용 효율화를 통해 생존하고 발전한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들을 보면 모두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경쟁력을 확보한 곳이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플랫폼 구축을 통해 생산 유통 판매에 소요되는 거래비용을 크게 감축시켰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비디오나 CD로 제작하고 판매하는 모든 거래비용을 하나로 줄인 넷플릭스와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거래비용을 감소시키는 기업은 풍요로운 성취를 맛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는 등 경제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기업뿐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낮추기 위해 생존 경쟁을 벌이는 것은 국가 경제도 마찬가지다. 거래비용이 낮은 나라에서는 기업들이 투자 보따리를 풀지만, 비싼 나라에서는 투자를 꺼린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 각국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며, 앞다퉈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대중소 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만 봐도 그렇다. 중소기업 보호라는 미명하에 추진되고 있지만, 국내 협력업체와의 거래비용을 높이는 규제가 들어 있다. ‘기술유용추정’ 규정이 대표적이다. 위탁 대기업이 기존 협력업체 물품과 비슷한 제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다른 협력업체를 통해 공급받으면 대기업이 기술을 유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기술을 유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론 한 번 납품계약을 맺으면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를 바꾸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바꾸면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지 않는 한 유죄로 처벌하겠다는 건데, 어떻게 다른 업체와 계약하겠나. 더구나 기술은 협력업체가 갖고 있는데, 대기업더러 스스로 도둑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라니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 된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더 싸고 질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협력업체가 나오더라도 ‘그림의 떡’ 보듯 할 수밖에 없게 된다.이 규제는 또 국내 협력업체와 거래할 때만 적용되니 대기업들은 아무래도 해외 협력업체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러니 상생법 개정안이 오히려 혁신과 상생을 막고 기업들을 해외로 내모는 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기업하는 데 거래비용이 높은 나라다. 한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한국에만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가 적용된다. 법으로 규정된 규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국보다도 많은 세금 부담에, 높은 임금과 고용 경직성, 그리고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한에 강성 노조의 횡포도 견뎌야 한다. 그것뿐인가. 사업을 하나 하려면 수없이 많은 시민단체·환경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고, 상생이라는 명목하에 내야 하는 기금의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사회적 갈등 비용을 전적으로 기업에 떠넘기는 꼴이다. 여기에 반기업 정서는 덤이다.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국민 정서까지 살펴야 하니 차라리 사업 자체를 접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다들 입으로는 경제를 살리자고 한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기업의 거래비용을 높이는 정책을 마구 도입하는데, 결과가 좋을 리 없다. 한국에 투자하라며 기업들을 독려한다고, 기업혁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덕담만으로는 기업이 투자 보따리를 풀지 않는다. 유일한 방안은 거래비용을 낮추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것이 코스가 이미 80여 년 전 제시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