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디지털화한 資産의 이동에 주목해야

부동산·예술품 등 '자산의 디지털화' 가속
중개 수수료 없이 작은 단위 투자도 가능
'데이터 3법' 처리 등 시장 기반 다져야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에 따라 이 세상은 두 개로 존재하게 됐다. 하나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실물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세상’이다. 예전만 해도 디지털 세상은 실물 세상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수단에 머물렀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디지털 세상이 되레 실물 세상의 일을 주도하고, 실물 세상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디지털 세상에서의 경쟁력이 실물 세상의 기업 또는 개인의 경쟁력과 연결돼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대가 됐다.

피터 웨일 미국 MIT 교수가 “어떤 비즈니스든 디지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이익률이 평균 30% 높게 나온다”고 한 것을 보면 디지털 세상이 실물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디지털 세상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자산(asset) 분야다. 현실 세상의 수많은 자산, 예를 들면 부동산 금 골동품 예술품 등이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화돼 디지털 세상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바우웬이라는 독일 부동산개발회사는 2억5000만유로 상당의 부동산 자산을 디지털화했다. 바우웬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소유를 증명하기 위해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판매한다.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에는 참여하기 어려웠던 투자자들이 최소 단위 1유로만으로도 투자가 가능하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물론 이런 거래에는 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없으며 실시간 거래도 가능하다.

국내 한 기업은 예술품의 가치를 기반으로 블록체인을 이용해 일반인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쉽게 예술품에 투자하고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 예술품의 검증 정보와 거래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그동안 개인 간 물밑 예술품 거래로 인한 가치 평가 및 가격 결정의 어려움을 투명하고 용이하게 해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예술품 거래 시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물 세상의 자산들이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와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되면서 많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서로 간의 신뢰 문제로 인해 거래 절차가 복잡할 수밖에 없어 중개 수수료가 만만치 않고 거래 속도도 느려 자산의 유동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디지털화된 자산의 유동성이 빨라지고 중간 수수료도 없앨 수 있게 됐다. 또 큰 덩어리의 실물 자산은 작은 단위로 쪼개고 작은 단위의 자산은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묶는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 상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한 보고서에 의하면 이런 디지털 자산 시장은 현재 2조달러(약 2240조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 세계 자산의 약 10%에 육박할 것이란 예측 기사도 있다. 디지털 자산 시장의 확대와 함께 기존 자산 시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금융 분야에서 앞서가는 스위스 증권거래소가 스위스텔레콤과 손잡고 디지털 세상의 자산을 거래하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변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 기술이 바꾸게 될 많은 사회 현상에 대한 담론이 나오고 있지만, 자산의 이동 현상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기존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이제는 디지털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로 그 중심을 옮겨야 하는 시점이다. 2조달러가 됐든, 10조달러가 됐든 변화하는 시장에서는 ‘선점’ 전략이 필요하지 않은가. 세상의 무수한 자산이 이동하고 돈의 흐름도 바뀌고 있는데 ‘데이터 3법(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조차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어디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