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수출환경 호전될 듯…시장 다변화로 무역분쟁 위기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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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회 무역의 날올해 한국 기업들은 무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업종 부진이 계속되면서 수출은 12개월 연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 홍콩 시위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확대와 세계 경제성장률 둔화도 악재로 작용했다.
'글로벌 무역환경과 수출' 좌담회
사회=양준영 한경 논설위원
내년에는 올해보다 통상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가격 안정화와 미·중 무역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미래 수출 동력을 육성하는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달 29일 ‘제56회 무역의 날’을 맞아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와 우리의 수출 전략’을 주제로 서울 당주동 포시즌스호텔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한진현 무협 부회장과 박태성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형기 (주)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이사, 이영민 (주)세경하이테크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양준영 한경 논설위원이 사회자로 나섰다.▷양준영 논설위원(사회)=올 한 해 수출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태성 실장=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외 불확실성이 가장 높았던 한 해였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기업이 한 해 동안 열심히 뛰어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 수 출 물량도 2018년에 비해 증가했습니다. 수출 구조 측면에서도 2차전지, 바이오헬스, 전기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미래 성장 품목이 기존 주력 품목을 대체해 나아가는 등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도 올해 초부터 ‘민관합동 무역전략조정회의’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출 지원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기업별 수요를 반영한 수출 바우처 확대, 해외 박람회 등 수출 마케팅 600여 회 지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수출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소비재, 수출 지역, 중소기업, 전자무역 등 분야별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이재영 원장=우리나라 수출을 지탱하던 반도체와 중국이라는 두 기둥이 흔들리고 국제 유가까지 하락하면서 올 1~10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3% 감소했습니다. 반도체 가격이 급격히 하락한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반도체 착시현상’을 제거하더라도 한국 수출은 2011년부터 구조적 둔화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해는 수출 6049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4785억달러에 불과합니다. 2017년에도 반도체 수출을 제외하면 4758억달러를 기록해 5000억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같은 급격한 수출량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사회=기업들은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습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실적을 냈는데 어떻게 불황을 극복했습니까.
▷김형기 대표이사=저희 셀트리온헬스케어은 올 1~9월 기준 7억1184만달러의 수출을 기록했습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수출품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약품인 만큼 미·중 무역분쟁 등 통상 갈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바이오제약산업이라는 특징 덕분에 연간 10억달러 수출 달성이라는 올해 목표를 향해 순항할 수 있었습니다. 의약품 수출이 매년 늘고 있어 내년에는 20억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합니다.▷이영민 대표=올해 세경하이테크의 수출액은 1억3000만달러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매출에서 수출이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꾸준히 신제품을 개발하고 신규 거래처를 발굴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7년간 운영한 중국 공장을 모두 베트남으로 이전했습니다. 삼성전자 등 대형 납품업체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사회=한국의 수출이 성장하려면 이런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수출 회복 시점은 언제로 예상합니까.
▷이 원장=KIEP는 내년 상반기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가격이 얼마나 빨리 회복되는지가 관건입니다.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둔화하면서 내년 상반기엔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반도체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지만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오히려 지금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런 선제적 투자로 위기를 타파할 수 있습니다. 내년 유가도 올해보다 10%가량 낮은 배럴당 50달러 초반대에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박 실장=저희도 내년에는 미·중 스몰딜(부분 협상) 가능성, 반도체 업황 개선 등으로 올해보다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부터 수출 감소세가 둔화하다가 내년 1분기부터는 증가세로 전환될 전망입니다. 특히 낸드플래시는 올 4분기부터, D램은 내년 2분기부터 수급이 개선될 것입니다. 또 한국 조선사들이 지난해 수주한 선박이 2020년에 본격적으로 인도되면서 건조량 증가가 수출 증가세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년 세계 경제와 세계 무역 성장률이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한국 수출에 긍정적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올해보다 0.4%포인트 높은 3.4%로 예상했고, 세계무역기구(WTO)는 내년 세계 무역 성장률을 올해의 두 배 이상인 2.7%로 전망했습니다.
▷사회=미·중 무역분쟁을 얘기하셨는데 미·중 협상이 곧 타결될 듯하면서도 잘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수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는데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요.
▷한진현 부회장=무역분쟁으로 미·중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미국 수출 감소로 중간재 수요가 하락하면서 중간재를 수출해 먹고살던 한국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일본 정부가 언제든 자의적으로 수출을 규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집중된 무역 의존도를 줄이고 중간재 수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술동맹을 구축하고 연구개발(R&D)이나 디자인 등 글로벌 밸류 체인(가치 사슬)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사회=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박 실장=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입니다. 이런 부분은 민관이 함께 협력하고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먼저 통상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공유하는 민관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년부터 주요 통상 이슈별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통상정보센터’를 신설하고 KOTRA, 무역보험공사 등 수출 지원기관과 업종별 단체로 구성된 현장 대응반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또 기술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기술 인증과 관련된 정보 및 비용을 정부가 체계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사회=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무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박 실장=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수출구조 혁신을 위해 정부는 여러 분야를 나눠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수출 품목의 고도화를 위해 기존 주력 산업 중에서 고부가가치 품목과 2차전지, 바이오·헬스 등 신수출 동력을 집중 육성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로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 현재 수출 구조의 고위험성을 낮추고 제2의 수출 도약을 도모하겠습니다.
▷이 원장=이제 상품만 잘 팔면 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세계 각국이 경쟁우위 산업을 중심으로 세운 혁신성장 전략을 분석하고 참고해 한국만의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남방·신북방의 기술동맹과 플랫폼 구축을 주도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의 디지털 인프라 수요가 크기 때문에 이들과의 협력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회=마지막으로 기업 입장에서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 대표=중소기업으로서는 주 52시간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력이 부족하지만 추가 인력을 충분히 뽑을 수 있는 여건도 아닙니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세세히 들여다본 뒤 경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김 대표이사=셀트리온헬스케어가 해외로 의약품 판매를 추진할 때마다 판매 허가, 약가 등재, 유통 인증 취득 등으로 인해 상당 기간이 소요됩니다. 정부 주도의 국가 간 협약을 통해 기간을 단축하거나 보다 원활한 허가 절차가 마련되면 훨씬 수출에 유리할 것입니다. 또 해외 기업이 한국에 들어와 국내 바이오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도록 법인세 감면 등 유인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