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1년, 정치권에 막혀 혁신성장 손도 못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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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외치며 고군분투했지만…문재인 정부 2기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오는 10일 취임 1년을 맞는다. 홍 부총리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신세계그룹의 화성 테마파크 등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수출 생산 소비 등 주요 경제지표가 홍 부총리 취임 후 악화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방점을 찍었던 1기 경제팀과 달리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을 강조했지만 1년 가까이 되도록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고민거리다.공유경제에 의욕 보였지만…홍 부총리는 작년 11월 부총리 후보가 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신산업 분야에서는 규제를 혁파하겠다”며 “(소득주도성장의) 의도치 않은 문제점이 나타나면 이를 조정·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카풀·케이블카·제주 2공항 좌절
'경제 리더십' 발휘 못해
靑 '관료 불신' 한계 드러낸 듯
이를 두고 기재부 내에서는 “정책의 중심이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옮겨갈 것”이란 말이 나왔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지표가 악화하는 등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전임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두고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냈다.
홍 부총리가 취임사에서 현 정부의 3대 경제정책(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중 혁신성장을 가장 먼저 언급하자 정책 변화에 대한 기재부 안팎의 기대가 높아졌다. 홍 부총리가 혁신성장 중에서도 특히 강조한 것은 공유경제 활성화였다. 그는 “공유경제가 선진국에서 보편적인 서비스라면 한국에서도 못할 바가 없다”고도 했다.하지만 홍 부총리는 취임하는 날 뜻밖의 암초에 부딪혔다. 정부가 공유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카풀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반대하던 택시기사가 분신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카풀 서비스 확대는 ‘올스톱’됐고 정책 주도권은 기재부에서 정치인 출신 장관(김현미 장관)이 있는 국토교통부로 넘어갔다. 27만 명에 달하는 택시기사 표를 무시할 수 없었던 정치권까지 가세해 택시업계 손을 들어줬고 결국 공유경제 활성화는 물꼬도 트지 못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에 의문부호다른 부처들이 홍 부총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규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일도 있었다.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막은 환경부가 대표적이다. 홍 부총리는 사석에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킨다면서 케이블카도 못 짓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역시 홍 부총리는 부정적이었지만 김현미 장관이 ‘일방통행식’으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부총리에게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관료에 대한 불신이 강한 현 정권의 태생적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여당과 청와대가 ‘경제관료는 보수적’이란 생각이 강해 이들이 내는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본인들의 철학대로만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이 홍 부총리를 내년 4월 총선에 내보낼 것이란 소문까지 돌면서 기재부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홍 부총리가 시간이 지나며 방향성을 잃어버린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