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모르는 집값 '나홀로 질주'…일본처럼 부동산이 '디플레 뇌관' 될까 ['D'공포 논쟁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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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떨어지는데 집값 철 모르는 질주올해 9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초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11월까지 0%대를 기록 중이다.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에 빠뜨린 디플레이션(deflation)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 경제가 맞닿은 새로운 국면을 진단해본다.[편집자주]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진입 경고음이 높아지면서 주택시장 또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금자산의 가치가 치솟으면 대표적 실물자산인 부동산의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다만 급락 신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D의 공포'가 과대됐다는 평가도 나온다.◆‘가보지 않은 길’ 갈까
日은 부동산 버블 붕괴 뒤 디플레이션
"깡통전세 증가가 전조"
디플레이션의 대표적 사례는 일본이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을 겪는 동안 부동산가격 폭락과 물가하락이 차례대로 진행됐다. 주식과 부동산의 거품이 빠지면서 1990년대부터 물가상승률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1992~2016년 일본의 집값 누적 하락률은 53%를 기록했다.
한국도 최근 2~3년 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부동산 가격이 거품 단계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 상황이 일본의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는 진단도 있다. 일본은 부동산이 오르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과정을 겪었다. 은행이 담보를 집값 이상으로 잡아주면서 버블을 키웠고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들면서 부실이 번졌다.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가 늘고 있지만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작동해 한계 차주를 제외한 부담이 위기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민간경제연구소들도 당장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같은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세가 높고 자산시장이 안정돼 있어 버블 붕괴를 동반한 일본의 디플레이션 상황과는 다르다”면서도 “사회의 고령화 속도와 디플레갭(Gap)의 존재 등 일본과 유사한 구조적 징후들이 나타나 지속적인 점검은 필요하다”고 짚었다.
LG경제연구소는 ‘2020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에 달해 물가하락 기대 때문에 수요가 위축돼 물가를 더욱 떨어뜨리는 디플레이션 상황에 당장 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다만 저물가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위험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3년 이후 가계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정부의 대출 규제로 가계대출 증가폭은 둔화됐지만 가계대출 잔액 유지 등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은 증가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의 단기적인 투자활력을 높일 수 있도록 사회간접망(SOC) 투자 등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감세정책 등 규제개혁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오 위원의 진단이다.
디플레이션이 오지 않더라도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집값이 더 오르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이 과열된 상황에서 거시경제 여건이 안 좋아지고 있어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부동산시장은 경기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유동성의 힘이 언제까지 가격을 밀어올릴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철 모르는 집값…‘나홀로 질주’
경기 여건과 반대로 주택구매심리는 갈수록 살아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달 주택구매 소비자심리지수(CSI)는 120포인트를 기록해 전월 대비 5포인트 올랐다. ‘9·13 대책’이 발표됐던 지난해 9월(128) 이후 1년 2개월 만에 최고다. 이 지수가 100을 웃돌면 1년 뒤 집값이 현재보다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의미다.
주택구매심리가 살아난 건 8개월째다. 주택가격전망 CSI는 지난 3월 83포인트를 기록해 연중 최저를 기록한 뒤 8개월 연속 올랐다. 서울 집값이 본격 반등한 7월엔 100포인트를 넘어섰다. 지역별로 봐도 전국 모든 곳의 주택가격전망 CSI가 상승세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요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며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증가가 앞으로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집값 상승세도 전국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7월 첫째주 이후 22주 연속 올랐다. 올해 줄곧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이던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도 9월 넷째주부터 반등을 시작했다. 지난주엔 0.09% 올라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공급 위축이 우려되면서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내년부터 3기 신도시 등 30만 가구 규모의 공공택지에 대한 토지보상이 이뤄지면 부동산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시장에서 디플레이션의 전조증상은 집주인이 집을 팔더라도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깡통전세의 증가지만 전월세가격이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9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들이 활발히 거래되는 데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당장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