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비구니가 지켜온 한마디 '즉사이진'…"모든 일에 진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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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명성스님, 20권 전집 출간 간담회…"부끄러워 뽐낼 일 아냐" 겸손
고령에도 활력에 유머까지…"다른 사람 가르치기 전에 자신을 교육해야" "모든 일에 진실해야지요. 성실하고요.
작은 일에 소홀한 사람은 큰일에도 소홀합니다.
구순(九旬)의 명성스님에게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온 '즉사이진(卽事而眞)'의 뜻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단순하지만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아흔이라는 속세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은 분명했고, 생각은 더 또렷해 보였다.
기자들과 한 시간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 먼저 농담을 던지며 간담회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끌어가기도 했다.
5일 경북 청도의 운문사에서 만난 명성스님은 이곳을 국내 최대 비구니교육기관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그는 지난 49년을 운문사에서 보내며 비구니 제자들을 받고 가르쳤다.
그렇게 배운 제자들은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 비구니 스님은 6천여명. 이 중 2천100명이 운문사 승가대학, 명성스님을 거쳐 간 이들이다. 제자들과 함께한 노력과 시간은 고스란히 저작들로 남았다.
그가 쓴 논문과 강의록, 기고문, 법문 등은 이제 20권짜리 '법계명성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출간됐다.
국내 불교계에서 비구니 스님이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전집을 내기는 찾아보기 힘든 일. 기념비적인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기에 솔직히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겠느냐는 짐작이 앞섰다.
명성스님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그것은 섣부른 상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집을 내는 일은 새롭게 글을 썼다기보다는 오래된 수많은 원고들을 꺼내 다듬고 보완하는 일이었다.
명성스님은 전집을 내기 위해 하루 5시간을 교정보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오래된 원고들이 많은 탓에 교정 작업은 반복됐다.
최근에는 전집이 완성됐음에도 바로잡을 부분을 4곳이나 찾아내 교정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전집을 낸 비구니는 스님이 처음이라는 질문이 나오자 명성스님은 "처음이라는 것은 부족하기에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뽐낼 게 아니다"고 했다.
1952년 합천 해인사에서 출가한 명성스님은 불법에 귀의한 뒤로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대부분을 헌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회장을 8년간 할 동안에는 운문사를 아예 떠나 선방에 머무를 생각도 했지만, 제자들의 만류로 운문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현재도 강원(講院)에서 법화경, 열반경 등의 강의를 맡고 있다.
고령에도 가르침을 전하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한창때는 불전을 넘어 밀어(密語), 서예 등 갖가지 학문을 제자들에게 직접 전수했다.
그가 생각하는 스승의 표상은 무엇일까.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제자들에게 어떤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고, 훌륭한 스승은 설명을 해요.
뛰어난 스승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줍니다.
저는 감화를 주는 위대한 스승이 아니어서 안타깝네요.
'욕교여(欲敎餘) 선자교(先自敎)'라는 말이 있어요.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면 자신부터 교육해라. 이는 '불치심경(佛治身經)'에 있는 말입니다.
"
제자를 가르치기에 앞서 스승 스스로가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스스로가 '자립정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탓에 요즘에도 일어나거나 걸을 때 누군가가 팔짱을 끼고서 도와주려하면 피한다고 했다.
그만큼 건강에 아직 자신이 있고, 또 건강을 지키려 매사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아직도 매일 새벽 불상 앞 예불을 지켜오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자 비구니들이 좀 더 잠을 잘 수 있도록 몇 년 전부터 기상 시간을 새벽 3시에서 4시로 한 시간 늦춘 것이다.
놀라운 일은 최근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 등 유럽 여행도 다녀왔다.
구순에 쉽사리 엄두 낼 일이 아니다. 그가 여전히 활력 넘치는 건강, 쾌활한 유머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매사를 진실하게 임하라는 '즉사이진'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덕분이 아닐까.
명성스님은 간담회가 끝날 무렵 4년8개월15일간 썼다는 화엄경 필사본을 기자들에게 보여줬다.
약 80권 분량으로 하루아침 2시간씩을 투자한 결과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자들이 법계명성 전집을 앞에 두고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카메라를 바라보며 "김치, 김치"로 환한 미소를 대신했다.
/연합뉴스
고령에도 활력에 유머까지…"다른 사람 가르치기 전에 자신을 교육해야" "모든 일에 진실해야지요. 성실하고요.
작은 일에 소홀한 사람은 큰일에도 소홀합니다.
구순(九旬)의 명성스님에게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온 '즉사이진(卽事而眞)'의 뜻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단순하지만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아흔이라는 속세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은 분명했고, 생각은 더 또렷해 보였다.
기자들과 한 시간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 먼저 농담을 던지며 간담회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끌어가기도 했다.
5일 경북 청도의 운문사에서 만난 명성스님은 이곳을 국내 최대 비구니교육기관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그는 지난 49년을 운문사에서 보내며 비구니 제자들을 받고 가르쳤다.
그렇게 배운 제자들은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 비구니 스님은 6천여명. 이 중 2천100명이 운문사 승가대학, 명성스님을 거쳐 간 이들이다. 제자들과 함께한 노력과 시간은 고스란히 저작들로 남았다.
그가 쓴 논문과 강의록, 기고문, 법문 등은 이제 20권짜리 '법계명성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출간됐다.
국내 불교계에서 비구니 스님이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전집을 내기는 찾아보기 힘든 일. 기념비적인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기에 솔직히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겠느냐는 짐작이 앞섰다.
명성스님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그것은 섣부른 상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집을 내는 일은 새롭게 글을 썼다기보다는 오래된 수많은 원고들을 꺼내 다듬고 보완하는 일이었다.
명성스님은 전집을 내기 위해 하루 5시간을 교정보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오래된 원고들이 많은 탓에 교정 작업은 반복됐다.
최근에는 전집이 완성됐음에도 바로잡을 부분을 4곳이나 찾아내 교정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전집을 낸 비구니는 스님이 처음이라는 질문이 나오자 명성스님은 "처음이라는 것은 부족하기에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뽐낼 게 아니다"고 했다.
1952년 합천 해인사에서 출가한 명성스님은 불법에 귀의한 뒤로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대부분을 헌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회장을 8년간 할 동안에는 운문사를 아예 떠나 선방에 머무를 생각도 했지만, 제자들의 만류로 운문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현재도 강원(講院)에서 법화경, 열반경 등의 강의를 맡고 있다.
고령에도 가르침을 전하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한창때는 불전을 넘어 밀어(密語), 서예 등 갖가지 학문을 제자들에게 직접 전수했다.
그가 생각하는 스승의 표상은 무엇일까.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제자들에게 어떤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고, 훌륭한 스승은 설명을 해요.
뛰어난 스승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줍니다.
저는 감화를 주는 위대한 스승이 아니어서 안타깝네요.
'욕교여(欲敎餘) 선자교(先自敎)'라는 말이 있어요.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면 자신부터 교육해라. 이는 '불치심경(佛治身經)'에 있는 말입니다.
"
제자를 가르치기에 앞서 스승 스스로가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스스로가 '자립정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탓에 요즘에도 일어나거나 걸을 때 누군가가 팔짱을 끼고서 도와주려하면 피한다고 했다.
그만큼 건강에 아직 자신이 있고, 또 건강을 지키려 매사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아직도 매일 새벽 불상 앞 예불을 지켜오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자 비구니들이 좀 더 잠을 잘 수 있도록 몇 년 전부터 기상 시간을 새벽 3시에서 4시로 한 시간 늦춘 것이다.
놀라운 일은 최근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 등 유럽 여행도 다녀왔다.
구순에 쉽사리 엄두 낼 일이 아니다. 그가 여전히 활력 넘치는 건강, 쾌활한 유머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매사를 진실하게 임하라는 '즉사이진'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덕분이 아닐까.
명성스님은 간담회가 끝날 무렵 4년8개월15일간 썼다는 화엄경 필사본을 기자들에게 보여줬다.
약 80권 분량으로 하루아침 2시간씩을 투자한 결과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자들이 법계명성 전집을 앞에 두고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카메라를 바라보며 "김치, 김치"로 환한 미소를 대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