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최연소 상무 발탁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성별과 나이 떠난 강한 '성과주의'
유리 천장 깨지는 현상의 '시그널'
'경단녀'에게 희망 되기에는 일러
LG생활건강이 30대 여성상무를 발탁해 유리 천장에 금이 갈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LG생활건강이 30대 여성상무를 발탁해 화제다.

LG생건은 지난달 말 심미진 상무(34)와 임이란 상무(38)를 발탁했다. LG생건 측은 인사를 발표하며 "성과주의와 조직 내 성장기회를 고려해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승진 대상자의 근무 실적이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다.이 중 특히 눈길을 끈 건 LG생건의 '최연소' 임원이 된 심 상무였다. 그는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서 '만년 2위'였던 '온더바디'를 1위로 끌어 올렸다. 특히 '온더바디 벨먼 내추럴 스파 보디워시' 제품을 중국 1위 헬스&뷰티(H&B)스토어인 왓슨스에서 보디워시 부문 시장점유율 1위(30%)로 만들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실적 덕에 심 상무의 인사는 극히 '성과주의'에 기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남성도 34세에 상무가 되기는 쉽지 않다"면서 "이번 인사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성과에 기반을 둔 인사"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 기업은 직급체계가 있어 위계적인 질서가 있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성과만 있다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서 "기업의 강한 성과주의에 드라이브를 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특히 이러한 파격 인사를 한 주체가 LG 그룹이라는 점에 의미를 뒀다. 그는 "LG그룹의 여성 임원 비율은 삼성그룹보다 적다"면서 "이번 인사로 유리 천장이 완전히 깨지지는 않겠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파격적인 인사는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의 시그널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은 특히나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5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2.7%에 불과하다./사진=게티이미지
지난해 우리나라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3.6%에 불과하다. 성별 다양성 향상을 위해 정부가 임원 쿼터제 등을 도입한 유럽의 여성임원 비율이 평균 29.7%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지난 3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집계해 발표한 '2019년 유리천장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하기도 했다.

심 상무는 우리나라 여성이 '경단녀'로 진입하는 연령대에 속하기도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경력단절여성 현황)'에 따르면 경단녀 중에선 30~39세가 80만6000명(47.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49세(63만4000명, 37.3%), 50~54세(14만2000명, 8.3%), 15~29세(11만8000명, 6.9%) 순이었다. 일을 그만둔 사유로는 육아(38.2%), 결혼(30.7%), 임신·출산(22.6%), 가족 돌봄(4.4%), 자녀교육(4.1%) 등이 꼽혔다.

하지만 '경단녀' 연령대에 속하는 심 상무가 임원으로 승진했다는 것이 경단녀에게 희망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심 상무의 커리어는 일반적인 여성의 커리어와는 다르고, 경단녀가 되는 가장 큰 이유인 '육아'의 문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심 상무는 3년간 휴직을 했는데, 이 기간에 출산·육아 휴직 외에 해외연수도 포함돼있었다"라면서 "해당 연수는 기업에서 1년에 한 명만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라고 설명했다. 업무와는 동떨어진 채 육아에만 전념하는 일반적인 여직원의 휴직과는 다르게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시간을 추가로 가져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어 "경단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내 어린이집, 정부 차원의 육아 보조 등 다양한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면서 "이번 인사를 통해 일 잘하는 30대 여성이 본인의 업무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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