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시민 80만명 다시 거리로…"행정장관 직선제 무산땐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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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원 선거 압승 후 첫 집회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이후 홍콩 시민들이 8일 대규모 시위를 열어 민주주의를 외쳤다. 수많은 홍콩 시민이 이날 도심으로 쏟아져 나와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을 외치며 집회와 거리 행진을 벌였다. 6개월째 이어지다 최근 소강상태를 보였던 홍콩의 반중(反中) 시위가 새로운 동력을 받을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이날 시위는 지난달 24일 범민주 진영이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후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집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집회를 연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을 인용해 80만여명이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집회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이날은 홍콩과학기술대 2학년인 차우츠록 씨가 침사추이의 시위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지 한 달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민간인권전선은 낮 12시부터 홍콩의 대표적 번화가이자 반중 시위의 상징적 장소인 코즈웨이베이의 빅토리아공원에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민들이 몰리면서 공원은 금세 인파로 가득 찼다.
시위대 폭도 철회 등 5대 사항
요구 안 받아들여지면 3파 투쟁
시민들은 집회를 끝낸 뒤 오후 3시부터 빅토리아공원에서 센트럴의 차터로드를 따라 가두 행진을 벌였다. 시위대는 중국과 홍콩 정부에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 폐지 외에도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 등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시위 강도를 더욱 높여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총파업(罷工), 동맹휴학(罷課), 철시(罷市) 등 ‘3파(罷) 투쟁’과 대중교통 방해 운동 등 전면적인 투쟁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홍콩 경찰은 지난 8월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권전선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허가했다. 경찰은 그러나 집회 시작 시간과 거리 행진 경로에 대한 경찰의 지침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고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일이 있으면 바로 중단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깃발이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조건도 걸었다. 경찰은 이날 행진을 오후 10시까지만 허용했다.
시위 주최 측은 평화롭게 집회와 행진을 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 시민이 늘어나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외신들은 이전에도 홍콩 시위가 평화로운 집회로 시작됐다가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날 시위에서도 밤늦게 양측이 무력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베이징을 찾아 중국 고위 관리들을 만난 크리스 탕 홍콩 경찰청장은 시위대에 강경책과 온건책을 동시에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탕 청장은 “경미한 사건엔 인도적으로 접근하겠지만 폭력적인 행동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사법·경찰 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궈성쿤 중앙정법위원회 위원장은 탕 청장과의 만남에서 “폭력과 혼란을 제압하고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홍콩의 가장 긴박한 임무”라면서 홍콩 경찰의 엄정한 진압을 주문했다.지난 6일 밤 센트럴 지역에선 경찰의 최루탄 사용을 규탄하며 최루탄 성분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시위대는 자체 조사한 결과에서 최루탄에 사이안화물과 다이옥신 성분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며 정부에 성분 공개를 촉구했다. 다이옥신은 태아 생성, 면역 체계, 호르몬 생성 등을 교란하는 독성물질이다. 하지만 홍콩 정부와 경찰은 보안 등을 이유로 최루탄 성분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6월 시위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최루탄 1만2000발 이상을 사용했다. 지난달 시위대가 점거한 홍콩 중문대에서만 2300발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6월 9일 송환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지금까지 28주 연속 900여 차례 벌어졌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