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원, 공시가격 산정 방식 첫 공개…"ICT 활용, 오류 최소화"

"올해 공시가격 시스템 개선·검증 강화로 정확도 높일 것"
560명이 단독주택 22만호·아파트 1천390만호 산정…'주관개입 불가피' 한계도

지난 6일 서초구 서초동의 한 2층 단독주택 앞.
한국감정원의 표준주택(표준 단독주택) 조사자가 휴대전화 현장 조사 애플리케이션(앱)을 꺼내 해당 주택의 주소를 찾아 누르자 이 집의 토지·건물에 대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토지·건물 '특성조사'를 클릭하니 사전 공부조사를 통해 입력된 지목, 토지용도, 주위 환경, 토지대장·건축대장·과세대장 상의 면적과 산정 대지 개별공시지가, 면적, 구조, 용도, 내용연수 등 다양한 기초 정보가 제공된다.

조사자는 이 정보와 직접 현장에서 본 주택의 실제 현황과 맞는지 체크한다.

앱에서 보여준 정보가 잘못된 경우에 수정 입력하는 것도 조사자의 몫이다.감정원 주택공시처 단독주택공시부 정은경 차장은 "현장 조사에서는 주택이 상가 등으로 용도변경이 되진 않았는지, 증축 등 리모델링을 하진 않았는지, 멸실되진 않았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해당 주택을 계속해서 표준주택으로 사용해도 좋을지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정원의 표준주택 조사인력은 총 560명. 이들은 매년 8월부터 11월 초까지 약 석 달 간 이런 방식으로 전국 표준주택 22만가구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한다.

이를 토대로 11월 열리는 표준주택 선정 심사에서 그해의 표준주택이 확정되면, 이후 본격적인 공시가격 산정에 들어간다.감정원이 자체 개발한 가격 조사·산정 프로그램 'KRIMS(한국감정원 부동산통합업무시스템)'에 접속하자 조사 주택의 토지·건물 특성 기본자료는 물론, 최근 거래된 실거래가 금액, 인근 유사 주택의 감정평가 금액 등 가격 산정에 참고가 될 만한 자료들이 주르륵 업로드된다.
실거래가는 정부 RTMS(부동산 거래관리시스템)와 연계돼 거래 신고가 이뤄지면 자동으로 실시간 정보가 제공된다.

자연경관지구 등 특별한 행위 제한이 걸려있는 경우에는 별도 팝업으로 해당 내용을 알려준다.조사자는 현장 조사에서 얻은 정보와 시스템이 보여준 인근 주택 거래·평가금액 등을 비교해가면서 해당 주택의 적정 가격을 책정한다.

감정원 아파트상가공시부 이선오 과장은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해당 주택의 건축도면 정보를 보면서 다가구 등 주택의 층별 임대 가능 호수와 임대 수익성도 함께 판단해 공시가격 산정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사자가 산정한 공시금액과 실거래 정보 등과 가격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걸러주는 검증 기능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원은 토지 공시지가와 주택 공시가격 산정의 정확도와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KRIMS 프로그램에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기반으로 한 토지특성 자동조사시스템을 도입했다.

공간정보 기술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토지의 경사, 형상, 방위, 도로접면 등을 자동으로 계산해 조사자에게 보여준다.

조사자가 '평지'로 표기했는데 시스템상에 '급경사'로 돼 있다면 검증을 거쳐 오류를 바로잡는다.
단독주택·표준지와 달리 아파트(공동주택)는 감정원이 전국의 1천390만호의 가격을 전수조사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수시로 입주하는 신규 단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상시 조사체계를 갖추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를 매일 조회해 전산건축물대장이 생성된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는 건축물대장 등 공부자료를 확인하고 현장 조사를 거친 뒤 공시가격 산정 준비를 한다.

감정원은 아파트의 경우 층별 가치를 A등급부터 F등급까지 최대 6등급으로 나누고, 주택형별 기준 가격에 '층별 효용비'와 향·조망·소음 등 '위치별 효용비'를 곱해 공시가격을 산정한다.

역시 KRIMS가 제공하는 해당 주택형의 실거래가, 매물 정보 비교하며 적정 가격을 도출한다.
감정원은 이번에 개원 이래 처음으로 표준지·표준주택·공동주택 산정 과정과 프로그램을 언론에 공개하고, 현장 실습도 진행했다.

올해 공시가격 산정에 대한 '깜깜이 공시'와 부정확성 논란이 커지자 내년도 공시가격 발표를 앞두고 공시가격 산정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취지다.

감정원은 특히 공시가격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이 전국의 주택 가격을 매기다 보니 한계도 분명했다.

공동주택은 1천390만호에 대한 대량산정 모형을 사용하고 있어 개개 호수의 특성을 100% 반영하긴 어렵다.

조사자가 공시가격 산정 시점을 전후해 발생한 수많은 거래 내역 가운데 '적정 실거래가격'을 결정하면서 조사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특히 단독주택은 표준화된 공동주택과 달리 개별성이 강한 데다 실거래 사례도 많지 않아 공동주택보다 조사·산정 담당자의 주관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한다.

김태훈 공시통계본부장은 이에 대해 "공시업무뿐만 아니라 감정평가사의 모든 감정평가에도 결과적으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최대한 시스템화를 통해 가격을 객관화하고 조사자의 주관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원은 특히 올해 공시가격 논란을 거치며 가격 산정 시스템을 한 층 더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최상층의 경우 과거에는 단열 등의 문제로 가격 산정에서 C등급으로 처리됐다면 최근에는 조망권 등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을 감안해 로열층과 같은 A등급으로 보는 것이다.

실거래가 격차로 발생했던 주택 유형별 가격 역전현상도 시스템 보완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표준주택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감정원은 "예산 등 정부 결정에 달린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감정원이 조사한 표준주택 22만가구는 지방자치단체가 개별주택 396만가구 산정의 기초자료가 되는데, 올해 표준·개별주택 간 공시가격 형평성 논란이 불거진 원인 중 하나로 표준주택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 본부장은 "지자체가 산정한 개별주택 가격에 대해 더욱 엄격하고 정밀하게 심사해서 형평성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감정원은 이달 18일 표준주택 공시가격 예정가격 열람과 소유자 의견 청취를 시작으로 내년도 공시가격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국토부는 이에 앞서 이르면 이번주 중 내년도 공시가격 산정 방향과 함께 공시가격 신뢰성 강화 방안,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공개하는 내용의 '로드맵' 수립 계획 등을 밝힐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