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춘추전국시대…넷플릭스 공습 속 '콘텐츠 쟁탈'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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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유료 가입자 200만명 추정2019년 국내 미디어 시장은 격랑의 한 해를 보냈다. 세계적인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의 공습 속에 국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가 출범했다. CJ ENM과 JTBC가 손잡고 새로운 OTT를 내놓는다고 선포했다. 국내 유료방송 1위 업체인 KT는 OTT ‘시즌’을 내놨다. ‘디즈니플러스’를 선보이고 국내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또 다른 콘텐츠 공룡 월트디즈니와 손잡기 위한 물밑 움직임도 한창이다.올해가 ‘플랫폼 전쟁의 원년’이라면 2020년은 ‘콘텐츠 경쟁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플랫폼 전쟁 승리의 열쇠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플랫폼까지 가세해 생존을 건 콘텐츠 확보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예상이다.
토종업체 '합종연횡'…디즈니 가세 관심
플랫폼 합종연횡…대미를 장식할 디즈니
“(디즈니 측을) 만났다.”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파크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통신 3사 최고경영자 간 조찬 회동을 마치고 난 뒤였다. 김훈배 KT 뉴미디어사업단장도 최근 “디즈니와 관계가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로운 OTT ‘시즌’을 발표한 자리에서였다. OTT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디즈니와 손잡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국내 미디어업계는 디즈니가 누구와 손잡고 국내 시장에 진출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넷플릭스를 능가하는 콘텐츠 공룡이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지난달 12일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에서 OTT 디즈니플러스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21년 서비스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플러스에선 디즈니, 마블, 픽사, 21세기폭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이 보유한 콘텐츠 8000여 편을 무제한 골라 볼 수 있다. 한 달 이용료는 6.99달러(약 8150원)로 넷플릭스(7.99달러)보다 싸다. 뉴욕타임스는 “디즈니플러스가 ‘토르의 마법 망치’를 내려쳤다. 모든 것을 바꾸는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2016년 국내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올해 10월 기준 2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2월까지만 해도 40만 명에 그쳤으나 매달 증가해 1년8개월 새 5배 늘었다. 공격적인 콘텐츠 투자로 국내 OTT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넷플릭스의 공세가 거세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토종 미디어들의 합종연횡이 시작됐다. 올해 9월 지상파 3사의 ‘푹’과 SK텔레콤의 ‘옥수수’를 합친 통합 OTT ‘웨이브’가 출범했다. 비슷한 시기에 CJ ENM과 JTBC가 “OTT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내년 1분기께 새로운 OTT 플랫폼을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KT는 지난달 ‘시즌’을 발표했다. 가입 요금제에 따라 각기 다른 화질을 제공하는 경쟁 OTT와 달리 어떤 요금제에 가입해도 초고화질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차별화했다. 계열사 지니뮤직과 함께 화면에서 나오는 음악을 바로 찾아 들을 수 있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인공지능(AI)이 이용자의 얼굴 표정을 분석해 기분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기능도 넣었다.
승리의 열쇠는 ‘콘텐츠’
‘카오스(대혼란)’로 일컬어질 만큼 격변기를 겪고 있는 OTT 시장에서 승리의 열쇠는 콘텐츠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미 콘텐츠 확보 경쟁에 불이 붙었다. 포문을 연 곳은 넷플릭스다. 최근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그룹 CJ ENM, 종합편성채널 JTBC와 잇달아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강력한 라이벌인 디즈니플러스에 맞서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CJ ENM의 드라마 전문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은 내년부터 3년간 오리지널 드라마를 포함해 21편 이상을 넷플릭스에 공급한다. JTBC도 내년 상반기부터 3년간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는 드라마 20여 편을 넷플릭스에 공급하기로 했다.
지상파 TV 등 방송사는 난처해졌다.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넷플릭스 공급량을 늘리면 지상파 TV 등은 드라마 수급난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JTBC와 CJ ENM은 자체 OTT도 내놓을 계획이기 때문에 OTT 간 콘텐츠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디즈니는 넷플릭스 공급 콘텐츠 수를 줄여나갈 방침이다. 웨이브에선 SK텔레콤의 OTT 옥수수에서 제공했던 CJ ENM 콘텐츠를 볼 수 없게 돼 시청자들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웨이브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2023년까지 3000억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