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빈곤…한국은 과거 성공 낭비하고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 美 하버드대 교수 특별기고

경기 침체에 빠져드는 한국
성장률 저하는 수출 감소 아닌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 탓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과거 성공을 낭비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기고문을 한국경제신문에 보내왔다. 사진은 배로 교수가 2014년 6월 2일 ‘한국은행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해 기조연설하는 모습. /한경DB
세계적 경제학자인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진)는 “한국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으로 과거 성공을 낭비하고(squander)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존의 모든 정책을 되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런 정책은) ‘소득주도성장(income-led growth)’이라고 칭하기보다는 ‘소득주도빈곤(income-led poverty)’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배로 교수는 8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에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생각(Thoughts on income-led growth)’이란 제목의 특별기고를 보내 “한국 경제가 취약하고 경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배로 교수는 매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석학으로, 과거 한국의 경제 발전을 연구했으며 2003년 서울대에서 강의를 맡기도 한 지한파 학자다.그는 한국을 중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 10개국과 비교하며 투자와 성장이 안 되는 이유로 수출 감소가 아니라 한국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을 꼽았다. 포퓰리즘 정책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단기 공공 일자리 마련 등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 기업 및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 인상 등을 모두 지목했다.

배로 교수는 “한국이 1950년대 후반부터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소득 재분배가 아니라 전체적 경제 성장이었다”며 “이런 (포퓰리즘)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는 현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 정부에 “가장 좋은 건 실행된 모든 정책을 되돌리는 것이지만 정치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최소한 최저임금 인상을 중단하고 기업 등에 대한 세율 인상은 취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또 최근 정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50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짜고 있는 데 대해서도 “상품에 대한 총수요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정책, 즉 일종의 거대한 ‘케인지언 실험’을 하고 있다”며 “잘못된 분석에 근거한 것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과도한 재정확장은 결국 실패할 것
최저임금·법인세 인상 되돌려야"

“한국 정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재정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집행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에 기인한 정책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경제신문에 보내온 특별기고문의 한 대목이다.기고문은 당초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기자는 한국을 잘 아는 석학인 배로 교수에게 지난달 19일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틀 뒤 답장이 왔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정부 정책의 역할 등을 고려할 때 나는 한국경제신문이 제안한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보내달라.”

질문지를 작성해 보낸 뒤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8일(현지시간) 이메일로 도착한 것은 기고문이었다. 제목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생각(Thoughts on income-led growth)’.

그는 ‘한국 정부에 제언해달라’는 기자의 추가 요청에 “가장 좋은 것은 실행된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이지만, 그건 정치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최소한 최저임금 인상을 중단하고 이전 인상분의 일부를 환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업 등에 대한 세율 인상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배로 교수의 기고문 전문.한국 경제는 취약하고 경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2019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대략 1.8%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최근 1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최근 수십 년간 한국의 높은 성장률과 비교할 때 가파른 하락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총고정투자의 마이너스 증가율이다. 이는 2019년 한 해만 해도 전년보다 4%가량 줄어들었다. 이런 투자 위축은 경제를 어둡게 전망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지표며, 경기 침체의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10개 국가를 비교 대상으로 살펴봤다.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과 베트남 등이다.

한두 부자 국가를 빼면 대부분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다. 이들 10개국의 2019년 추정 평균 GDP 증가율은 4.0%고 추정 평균 총고정투자 증가율은 3.5%다. 한국은 이들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한국은 GDP 증가율에서 일본과 싱가포르를 앞설 뿐이고, 총고정투자 증가율은 맨 밑바닥에 있다.

아시아 전역을 통틀어 저조한 수출도 경제에 부정적 요인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2019년 이들 10개국의 평균 수출 증가율은 0.8%다. 한국은 -1.8%로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이를 바탕으로 수출 감소를 한국의 비관적 성장 전망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만으론 왜 한국이 GDP 증가율과 총고정투자 증가율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 수치에 훨씬 못미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의 경제 전망이 이웃 아시아 국가보다 눈에 띄게 나쁜 걸 설명하려면 한국 정부의 대중인기영합적(포퓰리즘)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한국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는 노동시장에 대한 현명하지 못한 규제(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제한 등), 복지 지출의 확대(단기 공공 일자리 확대 포함), 그리고 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 인상 등이 포함된다. 이런 정책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투자와 생산성 및 경제 성장을 전반적으로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이 1950년대 후반부터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부자에서 빈민으로 소득 재분배를 한 데서 나오지 않았다. 전체적 경제 성장이 원동력이었다. 이를 상기한다면 현재 이런 정책(포퓰리즘 정책)이 시행되는 현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게 놀라웠던 경제적 성공은 지금 ‘흥청망청 낭비(squander)’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런 정책을 ‘소득주도성장’이라 칭하기보다 ‘소득주도빈곤’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 로버트 배로 교수의 기고문 영문본 전문

다음은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가 ‘Thoughts on income-led growth’라는 제목으로 한국경제신문에 보내 온 기고문 영문본 전문

The South Korean economy is weak and may be slipping into a recession. The projected GDP growth rate for 2019 is around 1.8 percent, the lowest in 10 years and sharply below the high average growth rates over the longer history. Particularly noteworthy is the negative growth rate of gross fixed investment—around -4.0% per year for 2019. This contraction of investment is a clear indicator of weak economic confidence and a sign of possible recession.

A fair way to assess South Korea’s macroeconomic situation is to compare with other Asian economies. I looked at a group of ten, some richer but mostly poorer than South Korea. The group includes China, India, Indonesia, Japan, Malaysia, Philippines, Singapore, Taiwan, Thailand, and Vietnam. The average of projected growth rates of GDP and gross fixed investment for 2019 for this group of ten are 4.0% and 3.5%, respectively. South Korea is well below these averages, surpassing only Japan and Singapore for GDP growth and coming in at the bottom for the growth of gross fixed investment.

It’s true that weak growth of exports is a contractionary factor throughout Asia—the average growth rate of exports for 2019 for the ten countries is 0.8%, only moderately above South Korea’s value of -1.8%. In this respect, South Korea does better than Indonesia, Japan, Singapore, and Thailand, which range from ‑2.0% to -2.8%. One way to look at these results is that South Korea can reasonably blame part of its weak current growth outlook on an export decline. However, this argument does not explain why South Korea is doing so much worse than the average of its Asian counter-parts in terms of growth rates of GDP and gross fixed investment.

To explain why South Korea’s outlook is notably worse than that of its Asian neighbors, one has to look at South Korea’s populist policies. These interventions include unwise restrictions on the labor market (in the forms of sharp increases in the minimum wage and ceilings on hours worked), expansions of welfare spending (including increases in “temporary” public-sector jobs), and increases in tax rates on businesses and high-income individuals. It’s all a recipe for discouraging investment, productivity, and economic growth more broadly. The situation is especially unfortunate because broad economic growth—rather than redistributions of income from rich to poor—has been the reason that millions of people in South Korea moved out of poverty since the late 1950s. Now this wonderful success is being squandered. Instead of referring to its policies as “income-led growth,” the government should be using the term, “income-led poverty.”

■ 노벨경제학상 단골 후보…서울대서 강의한 '지한파'
로버트 배로 교수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로 매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 경제학자다.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 성장을 강조해왔다.

101개국 경제학자들이 협업해 제작한 경제학 전문 웹사이트 ‘경제학 연구논문(RePEc: Research Papers in Economics)’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4위’에 올라 있다.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신고전주의 거시경제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1974년 발표한 ‘정부 채권은 순재산인가’라는 논문에서 ‘합리적 기대이론’의 기틀을 제시했다. 경제 주체들이 미래 조세부담을 예상하고 현재 소비를 줄이기 때문에 재정지출은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론이다. 지금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한국의 금리, 경제발전 등을 연구했고 외환위기 직전 포스코연구소 초청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서울대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2006, 2007년 한국경제신문사 주최 글로벌 인재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다.△1944년 미국 뉴욕 출생
△캘리포니아공대 물리학과 졸업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미국 브라운대, 시카고대, 로체스터대 교수
△미국경제학회 부회장
△뉴욕연방은행 고문
△세계은행 자문역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미국기업연구소(AEI) 객원연구원
△하버드대 ‘분기경제학저널’ 공동편집인

정리=김현석 뉴욕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