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정상신뢰마저 '흔들'…'강대강' 우려속 협상반전 없나(종합)

트럼프 "모든 것 잃을 수도" 경고에 北김영철 "우린 잃을게 없어"
北 "트럼프에 대한 김정은 인식 달라질 수도"…'톱다운' 외교마저 실종 우려
북한이 미국에 '새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자의적으로 설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북미 간에 긴장감이 치솟고 있다.북한이 과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던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8일 밝히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노골화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곧바로 트윗을 통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며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더구나 비핵화 협상의 동력이었던 북미 정상 간 신뢰마저 흔들릴 조짐을 보여 우려를 키우고 있다.

북한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9일 발표한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 "우리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반발했다.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이렇듯 경솔하고 잘망스러운 늙은이여서 또다시 '망령든 늙다리'로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나는 트럼프에 대한 우리 국무위원장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영철 위원장의 입을 빌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아직은 북미정상간 신뢰가 살아있으니 새 계산법을 가져오라'는 촉구의 의미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김영철 위원장이 "격돌의 초침을 멈춰 세울 의지와 지혜가 있다면 그를 위한 진지한 고민과 계산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중략)…더 현명한 처사일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아직은 협상의 기회가 열려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북한은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김정은 위원장이 밝혔던 '새로운 길'로 직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북한이 이번에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ICBM 발사 동향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탄핵 정국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해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행보로 여겨지지만, 미국이 끝내 제재 완화 등에 있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실제로 발사까지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지난 2년간 이어져 온 비핵화 협상은 파국을 맞고 전쟁위기설이 나돌던 지난 2017년과 같은 위기감이 한반도를 휘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ICBM 발사를 명백한 '레드 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북한도 쉽게 도발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관측도 있다.

따라서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위험부담이 큰 ICBM 발사보다는 위성 발사를 통해 장거리 로켓 발사에 나설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물론 위성 발사도 ICBM 개발을 위한 준비작업이며 탄도미사일 기술을 적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한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어서 고강도 도발이지만, 노골적인 ICBM 발사보다는 여파가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핵실험·ICBM 발사 중단을 외교 업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일 뿐 ICBM을 쏜 것은 아니다'라며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한국 담당국장도 8일(현지시간)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ICBM 시험발사 말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나 위성 등의 발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 대응을 요구하는 외교적 위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북미가 위험수위를 넘나들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판을 완전히 깨지는 않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북미 정상이 2번의 회담을 포함해 3번의 만남을 통해 쌓은 관계가 모두 소진됐다고 볼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2017년과 같은 상황이 재연되리라 생각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크게 보면 결국 북한과 미국 모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협상의 과정에 있으며, 정상 간 '톱다운' 외교의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까지 한 상황에서 더는 협상에 기댈 것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더구나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국 정부도 북미 간 협상에서 중재자 혹은 촉진자 역할에 한계가 있어 과거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남측의 요구로 영변 핵시설 폐기에 합의했던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시하며 남북관계가 사실상 차단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반도 정세 안정을 중요한 외교목표로 가진 중국은 과거에도 북한의 고강도 도발 조짐에는 강력히 자제를 촉구해왔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의 어려움에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건설적 역할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중국의 만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중국이 미국과 갈등 관계라는 점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과 관계가 전반적으로 안 좋은 상황에서 중국도 섣불리 나서는 게 부담될 것"이라며 "미국도 중국에 역할을 요청하는 자체가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다음 주 방한할 미국의 대북 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의 행보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만나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그는 현재로선 방한 기간 북측과 따로 접촉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든 판문점 등에서 만남에 응하겠다는 생각이어서 깜짝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