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합의 난항에…민주 "4+1案 제출" vs 한국 "국회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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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兆 정부 예산안' 삭감 규모 놓고 與野 평행선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삭감 규모를 두고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10일까지 진통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뺀 야당들과 협의한 예산 수정안을 본회의에 바로 상정하겠다고 한국당을 압박했다. 한국당은 “민주당이 제1야당을 빼고 ‘밀실 예산’을 처리하는 건 불법”이라고 맞받았다. 여야가 예산안 심사를 ‘볼모’로 정쟁을 벌이면서 국회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 "정부 예산안 4兆 깎아야"
민주 "1.2兆 삭감 외엔 못 받아"
예결위 간사 협의서 이견 계속
한국, 무더기 수정안 제출 시사
필리버스터 철회 백지화 논의도
삭감 규모 두고 여야 대립여야 3당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들은 내년 정부 예산안 중 증감액 규모와 대상을 두고 이날 오후 늦게까지 협상을 벌였다. 513조5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에서 한국당은 4조원, 바른미래당은 3조원을 순삭감하자고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논의된 1조2000억원 순삭감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정부 원안에서 한국당은 4조원 정도 (순)삭감을 요구했고, 바른미래당은 3조원(순삭감)을 얘기했다”며 “2조5000억원 정도로 컨센서스(합의안)가 맞춰지려고 했는데 민주당이 ‘4+1 협의체에서 합의된 1조2000억원 삭감안 외에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전해철 의원은 “남북 경협, 일자리, 에너지 관련 감액 규모 등에서 이견을 해소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국당 등은 해당 사업 예산을 ‘선거용 표퓰리즘 예산’이라고 보고 삭감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인 만큼 양보하기 어렵다고 맞섰다.예결위 간사 협의에서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전날 3당 교섭단체가 합의한 예산안 협의 처리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철회 등이 백지화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한국당이 예산 심사 과정을 합의 뒤집기 무대로 전락시켰다”며 “처리를 위한 순조로운 길이 열리지 않으면 민주당은 4+1 공조 테이블을 통해 예정대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이 빠지더라도 민주당과 나머지 야당들의 표를 모으면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발언이었다.
한국당, “밀실·밀봉 예산 강행하나”
한국당은 4+1 협의체의 예산안 수정안 상정은 국회법 위반이라며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여당이 여전히 밀실·밀봉 예산의 무차별 강행통과를 시사하고 있다”며 4+1 협의체 논의를 겨냥해 “앞문을 열어놓고 뒷구멍을 파놓고 있다는 으름장”이라고 비판했다.이날 민생법안 통과를 위해 열린 본회의에서도 여야 간 기싸움이 벌어졌다. 예산안 협상이 결렬된 채 예정보다 한 시간가량 늦게 열린 회의에서 한국당은 민주당이 예산안 협의 처리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한국당이 ‘미루기’ 수법으로 예산안 논의를 파행시켰다고 맞받아쳤다. 장내에서는 의원들이 “조용히 해봐” “누가 반말했어” 등의 고성을 주고받는 장면도 벌어졌다.
‘누더기 예산 심사’ 비판도
한국당에선 예산부수법안 등에 대한 무더기 수정안 제출로 예산안 통과를 최대한 저지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예산안이 본회의에 첫 번째 안건으로 오를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국회법상 예산안에는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수 없다.의원들이 각자 본회의장 기표소를 ‘점거’해 투표를 지연시키는 전략도 거론됐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민주당이 4+1 예산안을 올린다면 재정을 도둑질한 불법 예산을 처리하는 것”이라며 “우리 당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야 대립으로 예산안 심사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최악의 ‘누더기 심사’가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달 예결위 논의가 멈춰선 뒤 3당 교섭단체 간사들의 예산안 협상은 전날까지 1주일 넘게 이뤄지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예산안 협의의 중심이 4+1 협의체로 옮겨갔지만 국회법상 근거가 없다는 ‘위법’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 관계자는 “당초 공언했던 ‘송곳 심사’는커녕 ‘누더기 심사’가 돼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은이/김소현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