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만 하면 몸값 2배 오른다?…3040 직장인 몰린 '한국판 에콜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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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교육기관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첫 프로그램 '42서울'대기업에 다니는 김모씨(32)는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 시작하는 무료 소프트웨어 교육프로그램 ‘42서울’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 다니는 직장도 나쁘지는 않지만, 보다 먼 미래를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42서울 교육기관에서 2년간 교육을 받으면 이직의 폭이 더 넓어지고 연봉도 대폭 늘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했다.
과기부, 프랑스 벤치마킹해 설립
2년 교육과정 '전액 무료'
교수·교재·학비 없는 SW교육기관42서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50억원의 예산을 들여 설립한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기관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첫 교육 프로그램이다. 멘토만 있을 뿐 교수도 교재도 없고, 학비도 없다.42서울의 벤치마킹 모델은 프랑스의 사립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인 ‘에콜42’다. 프랑스의 대표 통신회사 프리모바일의 그자비에 니엘 회장이 사비를 털어 세운 학교다. 이 모델을 과기정통부가 돈을 주고 들여왔다.
42서울에 쏠린 관심과 지원은 ‘폭발적’이다. 지난 11월 초 접수를 시작한 뒤 한 달여 만에 1만1118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몰렸다. 이 중 8338명이 지원자격을 얻기 위한 온라인 테스트를 거쳤다. 기억력과 이해력 등을 검증하는 테스트다. 코딩을 몰라도 기본적인 소양만 지니고 있으면 통과할 수 있다.지원자가 몰리자 과기정통부는 42서울의 수강자 수를 대폭 늘렸다. 본래 450명으로 예정한 1기 인원을 600명으로 증원했다. 2기, 3기 정원도 각각 450명에서 600명으로 확대했다. 총 1800명의 1~3기 정원이 한 달여 만에 마감됐다. 과기정통부는 3기 이후에도 지원자를 뽑을 예정이다.
지원자 연령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관계자는 “2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지만, 3040세대도 예상보다 많이 지원했다”고 전했다. 이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42서울을 통해 ‘제2의 커리어’를 노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지원자 커뮤니티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하는 사람이 꽤 되는 것 같다”, “42서울로 진로를 완전히 변경해보려 한다” 등의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42서울에 합격한 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직원은 “42서울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몸값을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과감히 도전했다”고 말했다.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예상했다”는 반응을 내놨다. IT 분야 스타트업 대표는 “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한 개발자를 구하는 게 힘들다 보니 요즘 개발자는 ‘부르는 게 값’”이라며 “경력이 있는 개발자는 몸값이 최소 연 1억원부터 출발한다”고 전했다.
동료가 개발·협업능력 평가
42서울은 다음달부터 1기 합격자를 대상으로 에콜42처럼 ‘라피신(예비 교육과정)’에 들어간다. 한 달 동안 가장 기본적인 C언어를 활용한 프로그램 개발을 이수하는 기간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단계 평가를 받아 상당수 합격자가 중도이탈할 전망이다. 최종적으로 남은 수강생들은 23개월간의 본 프로그램을 교육받는다. 5개의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필수로 수행한 뒤 웹 개발이나 3차원(3D) 그래픽 개발 등 전문과정을 하나 정해 자신의 진로를 확정한다. 개인 프로젝트도 있지만 대부분이 팀 프로젝트다. 동료가 개발능력과 협업능력을 평가한다.학습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프로젝트를 시간에 맞춰 수행하려면 거의 매일 출석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실에 머물러야 한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관계자는 “밤샘 프로젝트를 감수해야 하는 일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42서울에 지원한 직장인들이 줄줄이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42서울 이외에도 다양한 소프트웨어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과기부 “2023년까지 1만 명 SW인재 육성”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2023년까지 1만 명의 소프트웨어 인재를 육성한다는 정부 계획에 따라 탄생한 기관”이라며 “앞으로 새 교육 프로그램을 추가하면서 목표에 접근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에콜42 수준의 성과를 정부가 주도하는 42서울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에콜42는 니엘 회장의 막대한 기부금과 기업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기업과 취업망을 연계하고 있어 취업 후 진로도 명확하다.매년 1000명씩 배출되는 에콜42 졸업생들은 평균 약 6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내로라하는 스타트업 창업사례도 다수 배출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졸업 후 가능한 진로와 관련해서도 각종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