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풀타임 일자리 기준 논란…'친정부 시민단체'의 잘못된 통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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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30시간 이하' 파트타임 일자리로 계산하기도 하지만‘언론권력을 감시한다’를 기치로 내건 좌파 성향 시민단체 민주언론연합이 11일 '40시간 이상이 OECD(경제협력기구) 풀타임 기준? 이런 것도 틀리는 한국경제'라는 제목의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이 보도한 '30·40대 74만명 직장 잃고 알바 뛴다'는 기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자료는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 등을 통해 각종 포털에도 게시됐습니다.
고용부 "OECD, 주40시간 이상을 풀타임 일자리로 공식 통계"
민언련이 낸 자료는 “‘주 30시간 이상’인 OECD의 풀타임 일자리 기준을 한국경제신문이 자의적으로 ‘40시간 이상’으로 정해 보도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OECD가 시간제 근로자를 ‘주로 종사하는 직업에서 주 3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고용형태’로 정의하고 있다는 게 근거지요. 기사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풀타임 일자리 기준을 주 40시간 근로로 정하고 관련 통계를 내놓는다”고 돼 있습니다.하지만 이는 통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OECD가 풀타임 근로와 시간제 근로를 구분하는 기준이 하나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부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한 언론의 보도에 대응해 낸 해명자료 내용을 볼까요. “OECD는 일반적인 경제활동 인구 고용률 외에 ‘주 40시간’ 기준으로 실제 근로한 시간을 비율로 적용한 ‘풀타임환산 고용률(Fulltime Equivalent)’을 공식 통계로 발표합니다. 계산방법은 ‘고용률x주당실제근로시간/40시간’입니다. 국가별로 근로시간제나 시간제 비중이 다른 환경을 고려해 더 정확한 고용률을 내놓기 위해서입니다.”
고용부 설명대로 국가별 평균 근로시간 등 고용 환경은 천차만별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OECD는 하나의 현상에도 여러 기준을 정해 다양한 통계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30시간 이하’를 파트타임 일자리로 계산하는 통계가 있는 반면, ‘근로시간 40시간 이상’이라는 풀타임환산 고용률 지표도 있습니다. 민언련 주장과 달리 풀타임 일자리 기준은 하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은 이 중 ‘40시간 이상 근로’를 우리의 고용시장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풀타임 근로 기준이라고 봤습니다.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 근무를 할 경우 채울 수 있는 시간이지요. 이는 야근 등 연장근로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하고 계산한 숫자입니다. 주당 40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이기도 합니다.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감안하더라도 비현실적인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그렇다면 민언련이 제시한 기준인 ‘30시간 이상 일자리’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다른 결론이 날까요? 통계청 원자료 분석 당시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을 제외하고는 1~10시간 단위로 계산한 탓에 정확히 ‘30시간 이상’은 아니지만, ‘31시간 이상’ 기준으로 분석해 둔 자료는 있습니다. 여기서도 한국경제신문 기사의 요지였던 ‘30~40대를 중심으로 한 질 좋은 일자리 감소’는 여전히 관측됩니다. 올해 3분기 주당 31시간 이상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9만2022명 줄었습니다. 31시간 이상 근로자는 30대와 40대가 각각 15만3951명, 29만9766명 줄었지요. 질 좋은 일자리 감소가 30대와 40대에 집중되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합니다.
민언련은 자료에서 한국경제신문 보도를 비판하며 “5번 이내의 클릭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며 “결론에 현실 끼워 맞춘 기사는 안된다”고도 했습니다. 기사 저변에 정부를 비판하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럼에도 저는 민언련이 이런 자료를 낸 배경에 어떤 의도보다는 ‘무지’가 있다고 봅니다. 통계를 매일 들여다보는 경제 기자들도 자료를 들여다보고 통계청 브리핑까지 들은 뒤에도 쉽게 기사를 쓰지 못합니다.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 전에도 반드시 통계청이나 관련 부처에 확인 작업을 거칩니다. 통계라는 학문이 워낙 깊고 복잡해 자칫하면 잘못된 해석을 내놓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통계라면 더욱 어렵습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통계를 직접 접할 기회가 드문 민언련 관계자들이 통계를 잘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하지만 의도가 어땠든 이날 낸 자료처럼 ‘억지 언론 비판’은 민언련에 대한 비판을 더욱 거세게 만든다는 점을 단체 스스로 인식했으면 합니다. 민언련은 보수 성향 언론에만 유독 날을 세운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권력을 감시한다는 게 목적이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뉴스를 집중 성토하며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8월 문재인 정부는 한상혁 전 민언련 공동대표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지요. 언론 감시라는 취지는 좋지만, 이번 민언련 자료와 같이 결론에 현실을 끼워 맞춘다면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