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제주도에서 나온 물, 중국 가서 마셔라?

'제주용암수' 놓고 오리온·제주도 갈등
1200억 투자했는데 국내선 팔지 말라니

류시훈 생활경제부 차장
최근 만난 한 유통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근황을 물었더니 지방의 시장과 군수를 만나러 다니느라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시장, 군수님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매장에 농수축산물 등 지역 특산품을 더 납품하도록 해달라는 부탁(?)부터 “장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면 해결해줄 테니 뭐든 얘기해 달라”는 요청까지. 상당수 기초자치단체장이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돼 있다는 설명이었다.이런 지자체와 단체장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과감하게 투자한 기업 지원에 여전히 미온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제주용암수’라는 브랜드로 이달 초 생수 시장에 뛰어든 오리온은 제주도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제주도가 국내 시장에서 계속 제품을 판매하면 원수(原水)인 염지하수(용암해수) 공급을 끊을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용암수는 오리온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이다. 화산암반층을 통과하면서 자연 여과돼 육지로 스며든 염지하수를 뽑아내 원수로 쓴다.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풍부하다.

오리온은 2016년 제주 성산의 용암해수산업단지에 입주한 한 기업을 인수했다. 이후 1200억원을 투자해 3년여 만에 대량 생산시설을 완공했다.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제품발표회에서 “에비앙과 같은 프리미엄 생수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1일부터 가정용 배송에 나섰고, 내년 초 대형마트 등으로 유통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수출 계약도 맺었다.그러나 4일 제주도가 제동을 걸었다. 기자간담회를 열어 “염지하수를 국내 판매용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는데, 오리온이 국내 판매에 이용하려는 것은 유감”이라며 “시제품 생산을 위한 염지하수 공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용암해수단지를 관리하는 도 출연기관 제주테크노파크를 통해 염지하수 공급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리온은 아직 제주테크노파크와 정식 공급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그 전 단계로 사용신청서를 제출해 물을 공급받고 있다.

오리온은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허 부회장은 3일 생산공장 준공식에서 “‘2017년 원희룡 제주지사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국내에서 팔지 못하는 물을 어떻게 해외에서 ‘한국 물’이라며 팔 수 있겠느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도 관계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사업을 계속 진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리온은 용암해수단지에 입주한 다른 기업이 염지하수를 이용해 생산한 제품을 이미 판매하고 있는데, 특정 기업에만 경쟁을 제한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제품이 막 출시된 시점에 제주도가 강경해진 이유는 뭘까. 제주삼다수 때문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제주삼다수는 제주도 산하 공기업인 제주도개발공사가 생산하고, 광동제약이 판매한다. 공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견제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제주용암수를 둘러싼 논란이 진실 공방으로 흐르자 오리온과 제주도는 서로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있다. 원만한 해법을 찾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 국토에서 나오는 물을 중국 등 해외 소비자에게만 판매하라는 건 비상식적이다. 한국 소비자들이 중국에 가야만 제주용암수를 마실 수 있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면 곤란하지 않을까.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