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신뢰 깨진 르노삼성·한국GM…'강대강' 파업 우려

▽ '강대강' 노사 충돌 양상 "신뢰 깨진 상태"
▽ '강경' 돌아선 노조, 양보없는 임금 인상 주장
▽ 적자 르노삼성·한국GM 사측, 수용 여력 없어
르노삼성자동차노조와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르노삼성자동차지회가 12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르노삼성자동차가 부당노동행위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도 르노삼성차와 한국GM에서는 노사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와 시장 상황을 감안하라는 회사가 충돌 양상을 빚는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 노조가 파업 절차를 밟는 가운데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일시 중단했던 한국GM도 재개와 함께 파행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르노삼성 노조는 전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6일, 17일 노조 대의원대회와 쟁의대책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파업 시기와 강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가 조정 중지를 결정했고 파업 찬반 투표도 찬성률 66.2%로 가결된 만큼 합법적으로 파업권을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15만3335원(8.01%) 인상 △노조원 한정 매년 통상임금의 2% 추가 지급 △추가 인력 채용 △임금피크제 폐지 △일시금 및 격려금 400만원 등을 올해 임금협상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노조원의 임금을 10.1% 높이고 정년퇴직까지 고임금을 보장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임 지부장 선출을 마친 한국GM 노조도 임단협 재개를 앞두고 있다. 앞서 노조는 △기본급 12만3526원(5.65%) 정액 인상 △1인당 1650만원 규모 성과급·격려금 지급 △지난해 축소했던 복리후생 원상복구 등을 요구한 바 있다.김성갑 전국금속노조 한국GM지부 신임 지부장은 자동차 업계에서 대표적인 강성 노선의 생산직 근로자로 꼽힌다. 그는 노조 민주화 투쟁, 민주노조 사수 투쟁, 대우차 정리해고 철폐 투쟁 등으로 세 차례 구속 수감과 두 번의 해고를 거쳐 복직된 바 있다.

그는 지부장 선거에서도 △단체협약 원상회복 △구조조정 저지와 생존권 사수 △한국GM 발전전망 마련 △미래 자동차 대책위 운영과 대정부 교섭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단체협약에서 줄였던 복리후생을 모두 되돌리는 한편, 정부 세금을 투입해 한국GM을 GM의 글로벌 전기차 생산기지로 만들면서 구조조정까지 막겠다는 주장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 6월 부분파업으로 멈춰선 르노삼성 부산공장. 사진=르노삼성자동차
자동차 업계는 르노삼성과 한국GM에서 극심한 노사 대립이 재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체력이 되지 않고, 수 차례 반복됐던 실무협상 등에서도 타협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우선 르노삼성은 후속 차량 확보 없이 닛산 로그 위탁생산이 끝난 탓에 올해 수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12만9562대 차량을 수출했지만, 올해 11월까지 수출량은 8만4854대에 그친다. 지난해 10만대를 기록했던 로그 수출량이 6만4000여대로 주저앉은 탓이다. 그나마도 내년 로그 생산량은 0대가 된다.

지난 2011년부터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던 르노삼성은 2014년 르노 그룹이 연 10만대 규모의 닛산 로그 위탁생산을 맡기며 흑자로 돌아섰다. 르노삼성은 모회사인 르노 그룹이 로그를 대체할 신차를 배정하지 않을 경우 2022년 부산공장 생산량이 9만5000대를 기록, 지난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적자 전환과 생산직의 절반인 약 900명 규모 구조조정마저 예상된다.

르노삼성은 후속 신차 배정에 열을 올렸지만, 지난해 노조 파업을 지켜본 르노 그룹은 르노삼성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르노삼성을 '관리 사업장'으로 지정했고 르노삼성이 추진하던 신차 배정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르노삼성은 올 초 닛산 캐시카이 수주에 실패한데 이어 내년 출시할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XM3 유럽 수출 물량 수주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로서는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에 응할 여력이 없고, 파업이 실현될 경우 신차 배정 가능성도 사라진다는 게 사측의 시각이다.
지난 9월 한국GM 노조가 부분파업과 함께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2014년부터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한국GM도 노조의 요구에 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5년 동안 한국GM의 영업적자는 2조8011억원, 순손실은 4조4447억원에 달한다. 이 탓에 지난해 군산공장을 폐쇄했고 부도 위기마저 겪었다.

부도 위기에 처하자 노사는 복리후생 축소와 수익성 회복 이후 임금인상과 성과급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를 바탕으로 GM 본사가 64억 달러, 산업은행이 7억5000만 달러를 지원받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지원을 받으며 카허카젬 한국GM 사장은 연내 수익성 회복과 흑자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다만 업계는 올해도 한국GM이 적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 인상과 복리후생 원상복구를 요구한 노조가 지난 9월 전면파업을 단행해 200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혔고 신차 공백기가 발생하며 내수 판매량도 줄어든 탓이다.

올해 11월까지 한국GM의 내수 판매량은 6만765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8만2889대에 비해 18.4% 줄었다. 국내 완성차 업체 가운데 가장 저조한 실적으로, 최근 한국GM이 비정규직 585명이 속한 하청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한 데에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

노조가 주장하는 전기차 생산기지 역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GM은 전미자동차노조(UAW)와 자국 공장들을 전기차 생산기지로 탈바꿈하는데 합의한 바 있다. 이를 위해 LG화학과 오하이오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설립도 추진한다. 한국GM 노조의 요구가 이뤄지려면 GM이 UAW·LG화학과의 합의를 깨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업계는 르노삼성과 한국GM 노사 갈등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갈등이 장기간 이어져 노사 상호간에 신뢰도 많이 깨진 상태다. 르노삼성 노조는 신차 배정이 이미 이뤄졌지만 사측이 거짓말을 한다 주장하고 한국GM 노조는 신차 공백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입차 도입에 불매운동으로 맞섰다"고 지적했다.이어 "사측이 자동차 시장과 회사 경영상황을 공유해도 노조는 자료를 믿지 않거나 거부하는 모습도 보인다"며 "노사 모두 현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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