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대우 '티코'…故김우중, 작지만 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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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 기자의 [너의 이름은] 28번째수개월간 아주대학교병원에 입원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 장례식은 10일부터 이틀간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장 형태의 3일장으로 치러졌다.
▽ 연비 24.1㎞ 국내 최초 경차 '티코(TICO)'
▽ "아껴야 잘 살죠" 티코 광고 카피 유행
▽ 마티즈 1998년 한해 약 10만대 판매
한때 국내 재계 서열 2위 그룹을 이끈 김 전 회장의 별세 소식에 언론에서는 앞다퉈 그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온라인에서는 김 전 회장의 공과 실에 대해 설왕설래가 이어졌다.김 전 회장은 한국 경제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로 꼽힌다.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려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지만 무리한 투자와 분식회계로 회사와 국가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그래도 모두가 인정하는 업적이 있다. 바로 대우자동차로 국내 소형차, 즉 경차 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이다.대우자동차의 전신은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공업이다. 김 전 회장은 1978년 신진자동차를 인수하고 1983년 '대우자동차'를 공식 출범했다.대우차의 전성기는 1990년대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차량들이 이 시기에 줄줄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임팩트만 놓고 보면 국내 최초 경차 '티코(TICO)'가 단연 최고로 꼽힌다.
티코라는 이름은 영단어 'TINY', 'TIGHT', 'CONVENIENT', 'COZY'의 앞 글자를 조합해 탄생됐다. 직역하면 '작지만 단단하면서 편리하고, 아늑하면서도 경제적인 차'라는 뜻이다. 의역하면 '작고 편리하고 기분 좋은 동료'로 해석된다.
김 전 회장이 티코를 개발한 이유는 1980년대 후반 국민소득 증가에 힘입어 자가용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가장 실용적인 차량으로 평가받던 현대자동차 1세대 엑셀보다 더 작은 세그먼트 차량을 원했다.티코는 배기량이 800㏄, 무게가 640㎏에 불과하다. 리터당 연비는 24.1㎞를 자랑해 이름처럼 실용성을 앞세웠다. 가격도 당시 300만~400만원 정도로 저렴해 출시된 첫해에만 3만대가 팔렸다. 비교 대상이 없던 티코는 "아껴야 잘 살죠"라는 광고로도 큰 인기를 얻으며 '국민차' 타이틀을 거머쥐었다.티코의 후속 차종으로 나온 '마티즈(Matiz)'는 1998년 4월1일 출시됐다. 스페인어 남성명사로 '느낌', '색조', '농담' 등의 뜻을 가진 마티즈는 '작지만 빠르고 경쾌하며 활발한 차량'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티코가 개척자라면 마티즈는 소형차 시장의 파이를 키운 차량으로 평가된다.
마티즈는 개발 초기 디자인 선택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이탈리아 피아트에 제안했으나 적용되지 못하고 방치됐던 '루치올라'라는 콘셉트카의 디자인을 가져오면서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시판 첫날 8000대가 계약된 마티즈는 한 달 만에 내수 1만대를 돌파했고, 1998년 한 해에만 약 10만대에 가까운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마티즈가 만들어진 1998년은 IMF 때문에 경제형 소비가 대세였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실용성을 강조한 마티즈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대우차도 티코와 마티즈의 인기에 힘입어 25년 만에 국내 승용차 판매 1위에 오르는 경사도 맞았다.이후 1998년 대우차와 GM의 합작 추진이 표류하고 금융 당국이 기업어음·회사채 발행 제한을 가하자 대우그룹은 급격하게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대우차를 포함한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대우차는 2011년 3월부터 GM대우의 회사명이 한국GM으로 변경되고 쉐보레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마티즈는 이미 해외에서 스파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었고 한국에서도 기존의 마티즈 크리에이티브(3세대)의 차명이 스파크로 변경되며 13년에 걸친 역사도 마무리하게 됐다.김 전 회장과 대우차 모두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대형 SUV가 자동차 업계의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티코와 마티즈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스파크는 아직도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기아차의 레이와 소형차 시장을 이끄는 유일한 모델인 만큼 그 명맥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