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예언가의 대명사, 노스트라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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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예언가의 대명사 노스트라다무스는 1503년 12월 14일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조부와 외조부에게 라틴어, 역사, 수학, 점성술 등을 배웠다. 프랑스 몽펠리에대에서 의학과 인문학을 배운 그는 1534년 결혼했지만 흑사병으로 배우자와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떠돌면서 의사로 활동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555년부터 여러 예언집을 내놓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예언들은 주로 4행시 형식으로 구성됐으며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뒤섞인 난해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추종자들은 프랑스혁명,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등장, 아폴로호의 달 착륙, 9·11테러와 같은 수백 년 뒤의 역사적 사건을 예견했다고 주장한다. 1999년 7월을 앞두고는 전 세계적으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적이고 모호한 비유로 일관된 그의 예언은 어떤 사건에도 끼워 맞출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의술과 예언 등으로 여생을 보내다 1566년 통풍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묘비에는 “후세 사람들이여, 그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