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자신을 '고객에 미친 영감'이라 표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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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 미친 영감.'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자신의 경영혁신을 담은 책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서 자신을 표현한 말이다. 구 명예회장은 '고객'이라는 개념이 희미했던 1980~1990년대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라는 경영 철학을 제시했다. 말 뿐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 구 명예회장이 어떻게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제품에 반영했는지 그의 자서전을 토대로 몇 가지 일화를 통해 소개한다.
◆장판방 문화와 한국형 물걸레 청소기
1990년 5월 어느 날, 구 명예회장은 금성사 영동서비스센터를 사전통보 없이 불시에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그가 방문했을 때 주부 고객이 여럿 찾아왔다. 아이들이 옷을 벗어 던지면 세탁기 뚜껑이 너무 약해서 부러진다는 의견부터 냉장고는 움직이기 어려우니 바퀴를 달아달라는 불편사항까지 다양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연구개발(R&D) 비용 격차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영동서비스센터에서 이 장벽을 넘어설 '단서'를 찾아냈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소한 바람이라도 그것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기술적 성의'라는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말했다. "신제품의 아이디어는 결코 일본, 미국 신제품 카탈로그에 들어있지 않다. 이런 모든 아이디어는 다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고객이 우리의 스승이다. 고객은 정확하다. 지금이야말로 값비싼 외제품과 실용적인 국산품의 차이를 명확히 소비자들에게 인식시켜야 할 때다."이를 증명한 것이 당시 금성사(현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출시한 '한국형 물걸레 청소기'다. TV 광고를 시작하자 금성사 상품기획부에 "정말 물걸레질을 한 것처럼 잘 닦이느냐" "걸레는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어디서 살 수 있느냐" 등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구 명예회장은 "주부 고객들의 열띤 반응은 장판방으로 되어 있는 우리 나라 가정에서 여성들이 해 온 물걸레 청소가 얼마나 힘들고 진력나는 일이었는가를,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편리한 도구가 개발되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 왔는가를 여실히 확인시켜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국 주부들이 손빨래를 하는 이유
LG전자가 '세탁기 1등 기업'이 되는 데에도 고객의 힘이 컸다. 1989년 금성사 세탁기 사업부가 받아든 성적표는 굴욕적이었다. 시장점유율 1위를 삼성전자에 빼앗긴 것이다. 1969년 한국 최초의 세탁기를 내놓은 이래 한 번도 놓쳐본 적 없는 자리였다. 삼성전자는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당시 100일 넘게 이어진 LG전자의 파업도 1등을 놓친 큰 이유였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1위 탈환을 위해 F프로젝트팀이 구성됐다. 팀장은 조성진 기정(技正, 과장급)이었다. 세탁기 개발실에는 박사 출신 연구원도 많았지만 세탁기에 관해서라면 경험이 가장 많은 조 기정에게 팀장 자리가 돌아갔다.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설계, 제조까지 각 분야의 젊은 직원들이 팀원으로 들어왔고 개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F프로젝트팀은 그동안 당연시해온 모든 상식을 의심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선 세탁기의 본질적인 기능인 세척력의 기준부터 다시 검토했다. 세척력은 때가 씻겨나가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1.0이 이상적인 수치였다. 하지만 당시 국내 세탁기 업계에서는 0.5만 돼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1975년에 일본 히타치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은 그 기준을 따르며 세척력보다는 외형과 편의 기능을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었다.F프로젝트팀은 이런 기준부터 되짚었다. 1980년대까지 주부들은 세탁기를 돌린 후 세탁이 만족스럽지 않은 빨래는 따로 빼서 다시 손빨래를 했다. 제조사들은 그것이 주부들의 깔끔한 습관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F프로젝트팀은 세탁기의 세척력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연령대별로 30명의 주부를 초청해 만족스러울 때까지 손빨래를 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했더니 평균 세척력이 0.66으로 나왔다. 0.5는 살림 경험이 가장 적은 주부의 세척력 정도였다.시중에 나와 있는 세탁기들의 세척력도 다시 조사했다. 대부분의 세탁기는 제조 과정에서 애초에 설계한 품질을 밑돌아 0.38 정도밖에 안 됐다. 한국의 세탁기 제조사들은 고객의 요구에 크게 못 미치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품질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보니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일본에서 어떤 제품이 나왔나’를 중심으로 신제품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F프로젝트팀은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기준 자체를 새로 설정하고, 제품 구상 단계부터 제조라인 인력을 참여시켰다. 이 역시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로써 제조 과정에서 불만스럽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처음부터 배제할 수 있었다. 제조라인의 노하우를 설계 단계에서 적용하니 품질도 높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1990년에 나온 ‘인공지능 세탁기’다. 세척력이 뛰어나고 소음과 진동은 적으니 5개월 만에 20만 대가 팔려나갔다. 그때까지 최고 판매 기록은 1개월에 1만 대였다. 세월이 흘러 2017년 조성진 팀장은 LG전자 CEO가 됐다.
◆회장 결재 칸 위에 '고객 결재' 칸을 만들다
F프로젝트팀에서 시작된 제품 혁신의 노력은 세탁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10여 년간 이어진 제품 파괴가 그중 하나였다. 말 그대로 제품을 부순 것이다. 하자가 있어서 반품된 제품은 담당자를 모두 모은 가운데 부숴버렸다. 기능에는 문제가 없고 표면이 긁히거나 조금 부서진 정도였지만 가차 없었다. 애써 만든 제품이 폐기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직원들은 고객의 판단이 얼마나 엄격한지 느꼈다.
회의는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됐다. 활자로 된 고객 의견이 아니라 진짜 목소리였다. 녹음기를 켜면 고객의 생생한 육성이 흘러나왔다.
“며칠 전에 그 회사 제품을 샀어요. 오래 쓸 생각에 제일 비싼 것으로 샀는데, 집에 배달된 제품을 보니까 껍데기가 찢어져 있었습니다. 포장에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네요.”
그룹 내부에서는 사내 문서의 결재란에 '고객결재' 칸을 회장 결재 칸 위에 만들었다.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를 마련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고객의 의견을 반영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전에 그 제품의 여러 가지 특징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고객평가단은 목록에 적힌 제품의 속성에 ‘Yes’나 ‘No’로 답했다. 한 항목이라도 ‘No’를 받으면 제품 개발에 들어가지 않았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제품,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LG전자는 어느 업체보다 앞서나가고 있다. 의류관리기는 혼수에 꼭 포함되는 품목이 됐다. 여러 업체에서 잇달아 의류관리기를 출시하고 있지만 LG가 ‘스타일러’를 만든 것은 이미 2011년이었다.
2015년에는 대형 세탁기에 소용량 세탁기가 부착된 ‘트윈워시’를 내놨다. 경쟁 업체들 역시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세탁기의 표준이 됐다. 2016년부터 빠르게 성장한 건조기 시장을 이끈 것 역시 LG전자였다.중국 등 신흥국 제조사들의 가격 경쟁력 앞에서 선진국 가전 업체들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LG전자는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경쟁력을 높여왔다. 그 비결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이었다.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자신의 경영혁신을 담은 책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서 자신을 표현한 말이다. 구 명예회장은 '고객'이라는 개념이 희미했던 1980~1990년대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라는 경영 철학을 제시했다. 말 뿐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 구 명예회장이 어떻게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제품에 반영했는지 그의 자서전을 토대로 몇 가지 일화를 통해 소개한다.
◆장판방 문화와 한국형 물걸레 청소기
1990년 5월 어느 날, 구 명예회장은 금성사 영동서비스센터를 사전통보 없이 불시에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그가 방문했을 때 주부 고객이 여럿 찾아왔다. 아이들이 옷을 벗어 던지면 세탁기 뚜껑이 너무 약해서 부러진다는 의견부터 냉장고는 움직이기 어려우니 바퀴를 달아달라는 불편사항까지 다양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연구개발(R&D) 비용 격차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영동서비스센터에서 이 장벽을 넘어설 '단서'를 찾아냈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소한 바람이라도 그것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기술적 성의'라는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말했다. "신제품의 아이디어는 결코 일본, 미국 신제품 카탈로그에 들어있지 않다. 이런 모든 아이디어는 다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고객이 우리의 스승이다. 고객은 정확하다. 지금이야말로 값비싼 외제품과 실용적인 국산품의 차이를 명확히 소비자들에게 인식시켜야 할 때다."이를 증명한 것이 당시 금성사(현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출시한 '한국형 물걸레 청소기'다. TV 광고를 시작하자 금성사 상품기획부에 "정말 물걸레질을 한 것처럼 잘 닦이느냐" "걸레는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어디서 살 수 있느냐" 등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구 명예회장은 "주부 고객들의 열띤 반응은 장판방으로 되어 있는 우리 나라 가정에서 여성들이 해 온 물걸레 청소가 얼마나 힘들고 진력나는 일이었는가를,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편리한 도구가 개발되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 왔는가를 여실히 확인시켜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국 주부들이 손빨래를 하는 이유
LG전자가 '세탁기 1등 기업'이 되는 데에도 고객의 힘이 컸다. 1989년 금성사 세탁기 사업부가 받아든 성적표는 굴욕적이었다. 시장점유율 1위를 삼성전자에 빼앗긴 것이다. 1969년 한국 최초의 세탁기를 내놓은 이래 한 번도 놓쳐본 적 없는 자리였다. 삼성전자는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당시 100일 넘게 이어진 LG전자의 파업도 1등을 놓친 큰 이유였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1위 탈환을 위해 F프로젝트팀이 구성됐다. 팀장은 조성진 기정(技正, 과장급)이었다. 세탁기 개발실에는 박사 출신 연구원도 많았지만 세탁기에 관해서라면 경험이 가장 많은 조 기정에게 팀장 자리가 돌아갔다.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설계, 제조까지 각 분야의 젊은 직원들이 팀원으로 들어왔고 개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F프로젝트팀은 그동안 당연시해온 모든 상식을 의심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선 세탁기의 본질적인 기능인 세척력의 기준부터 다시 검토했다. 세척력은 때가 씻겨나가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1.0이 이상적인 수치였다. 하지만 당시 국내 세탁기 업계에서는 0.5만 돼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1975년에 일본 히타치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은 그 기준을 따르며 세척력보다는 외형과 편의 기능을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었다.F프로젝트팀은 이런 기준부터 되짚었다. 1980년대까지 주부들은 세탁기를 돌린 후 세탁이 만족스럽지 않은 빨래는 따로 빼서 다시 손빨래를 했다. 제조사들은 그것이 주부들의 깔끔한 습관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F프로젝트팀은 세탁기의 세척력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연령대별로 30명의 주부를 초청해 만족스러울 때까지 손빨래를 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했더니 평균 세척력이 0.66으로 나왔다. 0.5는 살림 경험이 가장 적은 주부의 세척력 정도였다.시중에 나와 있는 세탁기들의 세척력도 다시 조사했다. 대부분의 세탁기는 제조 과정에서 애초에 설계한 품질을 밑돌아 0.38 정도밖에 안 됐다. 한국의 세탁기 제조사들은 고객의 요구에 크게 못 미치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품질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보니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일본에서 어떤 제품이 나왔나’를 중심으로 신제품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F프로젝트팀은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기준 자체를 새로 설정하고, 제품 구상 단계부터 제조라인 인력을 참여시켰다. 이 역시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로써 제조 과정에서 불만스럽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처음부터 배제할 수 있었다. 제조라인의 노하우를 설계 단계에서 적용하니 품질도 높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1990년에 나온 ‘인공지능 세탁기’다. 세척력이 뛰어나고 소음과 진동은 적으니 5개월 만에 20만 대가 팔려나갔다. 그때까지 최고 판매 기록은 1개월에 1만 대였다. 세월이 흘러 2017년 조성진 팀장은 LG전자 CEO가 됐다.
◆회장 결재 칸 위에 '고객 결재' 칸을 만들다
F프로젝트팀에서 시작된 제품 혁신의 노력은 세탁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10여 년간 이어진 제품 파괴가 그중 하나였다. 말 그대로 제품을 부순 것이다. 하자가 있어서 반품된 제품은 담당자를 모두 모은 가운데 부숴버렸다. 기능에는 문제가 없고 표면이 긁히거나 조금 부서진 정도였지만 가차 없었다. 애써 만든 제품이 폐기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직원들은 고객의 판단이 얼마나 엄격한지 느꼈다.
회의는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됐다. 활자로 된 고객 의견이 아니라 진짜 목소리였다. 녹음기를 켜면 고객의 생생한 육성이 흘러나왔다.
“며칠 전에 그 회사 제품을 샀어요. 오래 쓸 생각에 제일 비싼 것으로 샀는데, 집에 배달된 제품을 보니까 껍데기가 찢어져 있었습니다. 포장에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네요.”
그룹 내부에서는 사내 문서의 결재란에 '고객결재' 칸을 회장 결재 칸 위에 만들었다.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를 마련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고객의 의견을 반영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전에 그 제품의 여러 가지 특징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고객평가단은 목록에 적힌 제품의 속성에 ‘Yes’나 ‘No’로 답했다. 한 항목이라도 ‘No’를 받으면 제품 개발에 들어가지 않았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제품,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LG전자는 어느 업체보다 앞서나가고 있다. 의류관리기는 혼수에 꼭 포함되는 품목이 됐다. 여러 업체에서 잇달아 의류관리기를 출시하고 있지만 LG가 ‘스타일러’를 만든 것은 이미 2011년이었다.
2015년에는 대형 세탁기에 소용량 세탁기가 부착된 ‘트윈워시’를 내놨다. 경쟁 업체들 역시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세탁기의 표준이 됐다. 2016년부터 빠르게 성장한 건조기 시장을 이끈 것 역시 LG전자였다.중국 등 신흥국 제조사들의 가격 경쟁력 앞에서 선진국 가전 업체들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LG전자는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경쟁력을 높여왔다. 그 비결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이었다.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