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혁신성장 시대 국익 계산법

선진국 정책의 숨은 의도 읽어야
기업 키우고 지키는 게 최고 국익
싸울 기업 있어야 소비자도 보호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페이스북의 반(反)독점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낼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기업 분할 명령설’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될 이유는 많다. 마이크로소프트(MS) 분할이 무산됐던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98년 미국 정부는 MS의 PC 운영체제(OS) 윈도와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의 결합을 문제 삼았지만, 반독점법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술 발전과 글로벌 경쟁이었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이 화웨이 등 글로벌 기업을 키우려는 이유를 미국은 잘 안다. 경쟁당국이 미·중 충돌 국면에서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프랑스가 구글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을 겨냥해 디지털세를 들고나오자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자국 기업 차별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프랑스산 수입품에 관세로 보복하는 계획을 내놨다. 국제적 디지털세 논의가 어떻든 미국 통상당국은 자국 기업을 대변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이 중국의 수출품에 부과하려던 15% 추가 관세를 보류하면서 애플이 중국에서 생산하는 아이폰이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이폰에 관세가 부과되면 애플이 삼성전자에 비해 불리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애플이 로비를 했다는 분석이 있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유럽연합(EU)이 신화학물질규제(REACH)를 도입한 배경에는 그들만의 국익 계산법이 있었다. ‘유해한 화학물질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 속에 감춰진 것은 ‘유럽 화학산업의 혁신’이었다. EU의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을 명칭만 보고 그대로 믿으면 위험하다. 유럽을 ‘하나의 데이터 시장’으로 만들어 미·중에 대항할 역내 기업을 키운다는 ‘계산된 국익’의 산물이다.일본 또한 국익 지키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는 일본이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자국 기업을 보호한다며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낸 것도 그렇다. 이런 일본이 데이터의 자체 생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서자, 국가 간 데이터 유통 규범을 정하자는 ‘오사카 트랙’을 제안했다. 일본은 미·중 충돌 장기화에 대비해 자국 기업 몸값을 높일 전략을 짜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은 화학산업 혁신 목적을 갖고 있는가. 두산중공업 등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기업까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탈(脫)원전 정책은 또 어떤가. 환경정책도 기업을 옥죄면 다 된다는 식이다.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갈 길이 멀다. 국가 간 데이터 유통은 둘째치고 국내시장에서라도 데이터 기업을 빨리 키워야 한다는 절박감이 안 보인다.

경쟁당국은 냉혹한 글로벌 경쟁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세계 경쟁당국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조성욱 현 공정거래위원장은 플랫폼·빅데이터 기업의 독과점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담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이런 걱정을 한다면 좋은 해법이 있다. 미·중의 거대 IT기업과 경쟁할 국내 대항마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AI 이용자 보호를 위한 컨트롤타워를 자처하고 나선 방송통신위원회는 투명성·책임성·안전성 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한국에서 원칙은 규제로 가는 전 단계다. AI 윤리를 말한다는 미국 EU 중국 일본 등은 AI 기업 키우기에 승부를 걸고 있다. 무엇이 국익인지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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