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플 때 맞는 주사이자 심폐소생술이죠"

연극 '여자만세2' 이여자 役 성병숙·양희경

2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개막
둘 다 올들어 세 번째 연극 출연
'안녕, 말판씨' 이어 같은 역 맡아
배우 양희경(65)과 성병숙(64)은 올해로 각각 데뷔 38주년과 42주년을 맞았다. 데뷔 이후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고 여전히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꾸준히 연극 무대를 찾고 있다. 올해의 끝도 연극으로 장식한다. 오는 24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여자만세2’에 70대 하숙생 ‘이여자’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세 번째 연극 출연이다.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두 배우를 지난 1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이들은 “한 해 동안 연극을 세 편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이라며 “그럼에도 무대는 내가 아프고 피폐해질 때 맞는 주사이자 심폐소생술 같다”고 입을 모았다.
오는 2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여자만세2’에서 ‘이여자’ 역을 맡은 배우 성병숙(왼쪽)과 양희경.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엄마의 의미 재해석한 점에 끌려”

두 배우의 인연은 깊다. 연극계에 소문난 ‘절친’이다. 두 사람은 199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창작뮤지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후 각자 드라마와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친분을 이어왔다. 지난 8~10월 공연한 연극 ‘안녕, 말판씨’에서도 주인공 욕쟁이 할머니 고애심 역을 번갈아 맡았다.

양희경은 “같은 역할을 맡다 보니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서로의 성향을 잘 알고 오랜 시간 다져온 신뢰가 깊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병숙은 “희경이와는 성격도 전혀 다르고 역할에 대한 해석도 조금씩 다르다”며 “그래서 더블 캐스팅된 의미가 더 큰 것 같다”고 했다.‘여자만세2’는 잘 만들어진 소극장 공연을 발굴해 재탄생시키는 예술의전당의 ‘창작키움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이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이번에 주연 배우들이 바뀌었다. 연출은 초연과 동일하게 장경섭이 맡았다. 극은 두 배우가 연기하는 이여자가 헤어진 딸 서희를 찾아오며 시작된다. 이여자는 엄마임을 숨기고 서희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하숙생으로 들어간다. 서희는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내며 며느리와 엄마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이여자는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서희의 변화를 이끈다.

두 배우가 계속된 공연 일정에도 거의 휴식 없이 ‘여자만세2’ 출연을 결심한 것은 소재 자체의 매력이 컸기 때문이다. 양희경은 “우리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공연장에선 보기 힘든 내용인데 드라마 단막극 같은 작품을 관객들에게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병숙은 “엄마라는 내 인생의 커다란 화두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며 “제 친딸 서송희가 이여자의 손녀 역할로 함께 나오게 돼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엄마의 의미를 재해석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양희경은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의미도, 형태도 조금씩 달라져왔다”며 “여자만세2는 이를 잘 그려내는 작품으로 엄마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야 주변 사람들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수평적 여성 서사 많이 다뤄져야”

이 작품에는 다양한 남자 역할을 한 명이 맡은 ‘멀티맨’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 배우가 출연한다. 서희 역엔 윤유선 최지연, 시어머니 ‘홍마님’ 역엔 김용선 정아미, 서희 딸 ‘홍미남’ 역엔 서송희 여우린이 캐스팅됐다. 이런 여성 중심의 서사에 대해 성병숙은 “반복해 올려지고 봐야 하는 것 같다”며 “그동안 수직적인 남성 중심의 서사가 많았는데 보다 수평적인 여성 서사가 많이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배우는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오를 생각이다. 성병숙은 “연극판이 아직 어렵지만 후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게 정말 좋다”며 “나 자신도 낡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양희경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와 달리 연극을 통해선 함께한 사람들과 오랜 시간 유대관계를 지속할 수 있어요.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무대를 통해 후배들에게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선배로 남고 싶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