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블랙아이스' 대처 매뉴얼 있지만 무용지물

전문가 "얼고 난뒤 염화칼슘 뿌렸다면 더 미끄러져…얼음위 소금 뿌리는 꼴"
"도로 구조도 문제…열선 어렵다면 홈이라도 내 제동거리 줄여야"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상주-영천고속도로 '블랙아이스' 연쇄 추돌과 같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길 위에 얇은 빙판을 이루는 블랙아이스(black ice)는 측정되지 않는 정도의 아주 적은 강수에도 발생하는 만큼 제설과 관련한 보다 명확한 매뉴얼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상주영천고속도로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지난 14일 새벽 무렵에는 기상청 강수 예보가 없어 따로 염화칼슘 예비 살포를 하지 않았다.

상주영천고속도로 자체 매뉴얼에 따르면 눈·비 예보가 있는 상태에서 노면 온도가 3도 이하일 때 제설제를 예비 살포한다. 사고 발생 약 50분 전인 오전 3시 57분께 이 고속도로 관리 위탁업체 소속 순찰원이 순찰 도중 비를 관측해 교통상황센터에 알려왔다고 한다.

일대 기온도 2도 정도로 관측돼 차량 7대와 인력 11명을 동원해 염화칼슘 수용액 3만ℓ를 살포하기로 하고 오전 4시 2분께 양방향 도로 제설에 착수했다는 것이 이날 회사 측 설명이다.

이는 상주영천고속도로 측이 애초 사고 발생일 오전 3시 30분부터 제설작업에 들어갔었다고 밝힌 부분과는 차이가 있다. 상주영천고속도로 관계자는 "제설차는 도개IC 부근, 군위JCT 부근에서 각각 출발해 염화칼슘 살포에 들어갔지만 이미 양방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제설차가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한 채 고립됐다"고 말했다.

회사 측 설명을 종합하면 전날 강수 예보가 없는 상태에서 당일 새벽 순찰 도중 비를 관찰해 예비 살포 조치를 했지만 사고를 막기에는 한발 늦었다는 것이다.

회사 측 설명대로라면 매뉴얼을 넘어 선제대응을 했는데도 블랙아이스에 대처하지 못한 결과가 됐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사고지점과 가장 가까운 관측장비인 소보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는 이날 오전 3시 42분부터 4시 31분까지 강수가 지속해서 감지됐지만 그 양이 미미해 강수량은 아예 측정되지 않았다.

아주 적은 양의 비에도 블랙아이스가 형성되는 현실을 볼 때 지금 매뉴얼은 무용지물인 셈이다.

더구나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사고 당시 기온은 영하 1.3도가량으로 측정되는 등 밤새 기온이 영하권이어서 이미 도로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제설 작업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유수재 한국교통안전공단 대구경북본부 교수는 "비 예보가 있어 미리 서너시간 전에 염화칼슘을 뿌리면 적은 비에라도 결빙으로 이어지지 않을 텐데, 얼고 난 뒤에 염화칼슘을 뿌리면 길이 더 미끄러진다"며 "얼음 위에 소금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고지점인 상주-영천고속도로 달산1교(26.1㎞ 지점) 일대 도로의 구조적인 문제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현장을 다녀온 전문가들은 사고 지점 지표가 높고 내리막 급커브인 데다, 응달 지역이어서 결빙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그에 대한 사전 안전조치는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 교수는 "교각 위 같은 결빙 위험 구간을 염화칼슘으로 계속 대처하기엔 한계가 있고 열선을 설치하는 것도 시간이나 비용 문제가 있다"며 "우선 도로 진행 방향으로 그루빙 즉 홈을 내는 조치만 해도 제동거리를 줄이고 배수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4일 오전 4시 43분께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상주-영천고속도로 영천 방향 차로에서 화물차 등 차 20여대가 연쇄 추돌하고 불이 나는 사고가 일어난 데 이어 5분 후 4㎞가량 떨어진 반대쪽에서도 10여대가 연쇄 추돌했다. 2곳에서 발생한 추돌사고로 모두 7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으며, 화물차 등 8대가 불에 타는 등 차 40여대가 파손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