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이춘재 사건' 檢·警에 책임 물을 길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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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당시 검사·경찰관 입건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불가
피해자측의 국가배상 청구소송 통한 민사적 책임추궁 길은 존재 근 30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확인된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은 극악한 범죄상 뿐 아니라 그 범죄를 중간에 끊지 못한 수사기관의 '실패'가 국민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겼다. 이춘재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에서 10∼70대 여성 10명이 잇따라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지만, 별개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춘재가 지난 9월 진범으로 지목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어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수감됐던 윤모씨의 재심 사건으로 가지를 쳤고, 급기야는 수사 관계자들의 불법 혐의로까지 비화했다. 윤씨의 자백을 받기 위해 경찰이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나온 데다 초등학생 피해자의 사체 은닉 혐의까지 더해진 것이다.
당시 검찰과 경찰 수사 책임자였던 인사 8명이 경찰에 입건된 사실이 17일 공개되면서 과연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사건 당시 검·경 수사라인에 있었던 인사들의 입건 사실이 알려지자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시효 제도의 개정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검·경 수사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법적 책임을 추궁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선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처벌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법률 전문가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경찰이 '수사 개시'를 의미하는 내부 절차인 '입건'을 했지만 수사의 종착역은 공소시효 만료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사실상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8일 연합뉴스가 법률 전문가 3명의 견해를 취재한 바에 따르면 수사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은 사건 피해자 쪽에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길인 것으로 보인다. 소송을 통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국가가 배상을 하고, 개인의 중대한 위법사실이 드러날 경우 국가가 수사 책임자들에게 구상권(채무를 대신 변제해 준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하여 채무당사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는 방식이 가능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를 위한 1차 관문인 민사 소송의 '소멸시효' 문제는 해결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민사소송에도 소멸시효가 있지만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결부된 국가배상 소송에서 최근 소멸시효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판결 또는 결정이 잇따르고 있는 점이 이런 추정의 근거다.
작년 8월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모씨 등이 소멸시효 제도를 규정한 민법 166조 1항 등이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에도 적용되는 것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을 희생할 정도로 국가배상 청구권의 시효소멸을 통한 법적 안정성 요청이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박정희 정권 시절 구로공단 조성 과정에서 농지를 빼앗긴 농민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5년)가 쟁점이 됐지만,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중대한 인권 침해 등이 발생한 과거사 피해자에 대해 일반적인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소멸 시효 문제가 극복된다면 다음 문제는 과연 배상 판결이 내려질지 여부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진범을 잡을 기회들을 잇달아 놓친 데다, 그 과정에서 증거를 숨기거나 가혹행위를 한 혐의에 대해 법원이 국가배상 판결을 내릴지 여부, 또 국가가 당시 수사 관계자였던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연합뉴스가 접촉한 법률 전문가 3명 모두는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된 경찰 관계자 등의 혐의 내용에 비춰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국가배상 문제에 정통한 중견 법조인은 "수사와 재판 관계자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라는 점에서 수사 관계자의 잘못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이 나오고, 개인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하려면 고의 또는 중과실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입증이 필요하다"며 "명백한 직권남용 또는 직무유기 등이 인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수사 관계자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그들을 구속하거나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는 등의 강제 수단을 동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법 행위가 어느 정도까지 규명될지가 관건인 셈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지낸 조순열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춘재 사건에서) 국가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최근 구로 농지 사건 등의 전례에 비춰 볼 때 소멸 시효를 배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더 나아가, 실제 불법을 저지른 당시 수사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구상권을 행사해야 이런 문제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팩트체크팀은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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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측의 국가배상 청구소송 통한 민사적 책임추궁 길은 존재 근 30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확인된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은 극악한 범죄상 뿐 아니라 그 범죄를 중간에 끊지 못한 수사기관의 '실패'가 국민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겼다. 이춘재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에서 10∼70대 여성 10명이 잇따라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지만, 별개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춘재가 지난 9월 진범으로 지목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어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수감됐던 윤모씨의 재심 사건으로 가지를 쳤고, 급기야는 수사 관계자들의 불법 혐의로까지 비화했다. 윤씨의 자백을 받기 위해 경찰이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나온 데다 초등학생 피해자의 사체 은닉 혐의까지 더해진 것이다.
당시 검찰과 경찰 수사 책임자였던 인사 8명이 경찰에 입건된 사실이 17일 공개되면서 과연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사건 당시 검·경 수사라인에 있었던 인사들의 입건 사실이 알려지자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시효 제도의 개정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검·경 수사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법적 책임을 추궁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선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처벌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법률 전문가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경찰이 '수사 개시'를 의미하는 내부 절차인 '입건'을 했지만 수사의 종착역은 공소시효 만료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사실상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8일 연합뉴스가 법률 전문가 3명의 견해를 취재한 바에 따르면 수사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은 사건 피해자 쪽에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길인 것으로 보인다. 소송을 통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국가가 배상을 하고, 개인의 중대한 위법사실이 드러날 경우 국가가 수사 책임자들에게 구상권(채무를 대신 변제해 준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하여 채무당사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는 방식이 가능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를 위한 1차 관문인 민사 소송의 '소멸시효' 문제는 해결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민사소송에도 소멸시효가 있지만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결부된 국가배상 소송에서 최근 소멸시효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판결 또는 결정이 잇따르고 있는 점이 이런 추정의 근거다.
작년 8월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모씨 등이 소멸시효 제도를 규정한 민법 166조 1항 등이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에도 적용되는 것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을 희생할 정도로 국가배상 청구권의 시효소멸을 통한 법적 안정성 요청이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박정희 정권 시절 구로공단 조성 과정에서 농지를 빼앗긴 농민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5년)가 쟁점이 됐지만,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중대한 인권 침해 등이 발생한 과거사 피해자에 대해 일반적인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소멸 시효 문제가 극복된다면 다음 문제는 과연 배상 판결이 내려질지 여부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진범을 잡을 기회들을 잇달아 놓친 데다, 그 과정에서 증거를 숨기거나 가혹행위를 한 혐의에 대해 법원이 국가배상 판결을 내릴지 여부, 또 국가가 당시 수사 관계자였던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연합뉴스가 접촉한 법률 전문가 3명 모두는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된 경찰 관계자 등의 혐의 내용에 비춰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국가배상 문제에 정통한 중견 법조인은 "수사와 재판 관계자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라는 점에서 수사 관계자의 잘못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이 나오고, 개인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하려면 고의 또는 중과실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입증이 필요하다"며 "명백한 직권남용 또는 직무유기 등이 인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수사 관계자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그들을 구속하거나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는 등의 강제 수단을 동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법 행위가 어느 정도까지 규명될지가 관건인 셈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지낸 조순열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춘재 사건에서) 국가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최근 구로 농지 사건 등의 전례에 비춰 볼 때 소멸 시효를 배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더 나아가, 실제 불법을 저지른 당시 수사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구상권을 행사해야 이런 문제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팩트체크팀은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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