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하늘과 땅 오가는 '천년의 사랑'…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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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7
향밀침침신여상“사랑에 얽매이면 한없이 나약해지지. 자유로울 수도 없느니라.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니 이 운단은 내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지.”
이경민 옮김 / 마시멜로
1권 464쪽·2권 444쪽 / 각권 1만5000원
사랑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화계(花界)의 신(神) 재분이 갓 낳은 딸 금멱에게 단약을 먹이면서 하는 말이다. 중국 인기 웹소설 작가 뎬셴(電線)이 쓴 장편소설 《향밀침침신여상(香蜜沈沈燼如霜)》은 금멱이 비극적인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서리와 같은 달콤한 향기는 여울지고 사랑은 재로 남아 흩어지지.’ 책 제목인 ‘향밀침침신여상’의 의미다. 이 소설은 금멱과 천계(天界)의 화신(火神)인 욱봉이 세 번의 윤회에 걸쳐 겪게 되는 은혜와 원한,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천년의 사랑을 지켜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죽게 되는 재분은 죽기 직전 딸인 금멱에게 운단을 먹여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금멱이 사랑에 얽매여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재분은 또 외부에 금멱이 태어난 것을 비밀로 하고 수경(水鏡) 안에서만 지내게 한다. 또 1만 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화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명한다.
4000년이 지난 어느 날 검은 새로 변한 욱봉이 수경 안으로 들어오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욱봉과 금멱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재분의 우려에도 금멱은 결국 욱봉과 사랑에 빠진다. 이후 금멱은 천계로 가 욱봉의 서동으로 지내면서 갖가지 일을 겪는다. 비극은 천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천제의 장남이지만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해 고독하게 자란 야신(野神) 윤옥과 천후의 소생이자 천제의 둘째 아들인 욱봉이 동시에 금멱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비극은 금멱의 어머니와 천제, 천후, 수신(水神) 사이에 일어났던 애증의 역사로 인해 금멱의 친아버지가 누군지 밝혀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금멱의 친아버지는 과거 자신의 장녀 혼사를 약조했다는 이유로 금멱의 정혼자와 금멱을 혼인시키려 한다. 이에 욱봉이 격렬히 분노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절정에 다다른다. 마치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중국 최대 소설 포털사이트 ‘진강문학성(晉江文學城)’에 인기리에 연재됐다. 중국 장쑤위성TV가 드라마로 제작해 지난해 8월부터 한 달 동안 63부작으로 방영해 큰 화제를 모았다. 동시간대 중국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인터넷 조회수가 140억 뷰를 돌파했다. 지난해 텐센트 동영상 어워드에서 ‘10대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드라마’에, 시나닷컴이 선정한 ‘2018 웨이보 인기 드라마’에 뽑혔다.소설이 특별한 것은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숨은 장면과 등장 인물들의 생각과 심리를 더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비극이 일어나게 됐는지 보여주는 재분의 과거 장면 등이 담긴 외전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 구조에서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선 묘사는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읽는 내내 몰입하게 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