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학혁신, 교각살우 경계해야

과장된 근거로 사학간섭 밀어붙여
대학 혁신 가로막는 일 없어야

정의진 지식사회부 기자 justjin@hankyung.com
7조1000억원. 정부가 지난 18일 사학혁신 추진 방안을 내놓으면서 밝힌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지원금(2017년 기준) 액수다. ‘이만큼 많은 세금이 사립대학에 투입되고 있으니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 정부가 사립대 운영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울 목적으로 정부는 이 수치를 들고나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곳은 (어디나) 투명하게 회계를 운용하고, 사학의 공공성과 책무성은 교육기관답게 더욱 높아져야 한다”고 사학혁신 추진 방안의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사립대학의 회계 운용과 인사에 개입하려는 명분으로 삼은 7조1000억원은 과장된 액수라는 게 교육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부 지원금 대부분은 대학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의 학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쓰이는 ‘국가장학금’이기 때문이다.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등교육 예산 9조5617억원 가운데 국가장학금 명목의 예산은 4조2404억원이다. 국가장학금을 제외한 나머지 액수 가운데 ‘국립대학 운영지원(3조1101억원)’ 항목마저 빼면 사립대학을 위해 쓰이는 예산은 최대 2조원 정도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국가장학금이 고등교육 예산으로 잡혀 사립대가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 듯 보이지만, 대학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등록금을 정부가 대신 내주는 셈이어서 대학으로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국가장학금 제도를 만들면서 등록금 동결까지 강제해놓고 생색은 정부가 다 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과장된 숫자를 근거로 삼은 사학혁신 추진 방안 내용엔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 많다. 교육부는 사립대 상시감사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부금 등으로 모은 적립금 사용 계획을 공개하도록 하고 적립금의 교육비 전환 계획을 조사하기로 했다. 일부 대학이 적립금을 쌓아만 두고 교육 투자엔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지만 실상은 대학이 쓰는 돈 한푼 한푼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물론 지금까지 대학의 잘못이 없지 않았다. 연구비·교비 횡령 등 사학비리는 끊임없이 발생해왔고, 대학은 국민에게 자정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사례로 대학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훼손하면 자칫 대학의 혁신마저 가로막을지 모른다는 우려에 정부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일부 교수와 사학의 비리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정부는 일부 사례를 침소봉대해 대학에 망신을 주고 있다”며 “지금도 강의 인원부터 출석 부르는 것까지 하나하나 간섭하는 지경인데 계속 이렇게 가면 대학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