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서민 vs 히어로''여성''디즈니', 2019 영화 3大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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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1000만 영화 5편 배출어느덧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한 해가 저물어간다. 100년 역사의 시작은 1919년 10월 27일 서울 종로의 단성사에서 상영된 연쇄활동 사진극 ‘의리적 구토’다. 지금과 같은 온전한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는 연극 중간에 삽입돼 상영된 연쇄극의 형태였다고 한다.
스크린 독과점·흥행 빈부격차는 여전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 퍼스트룩 대표 >
100년이란 시간 속에서 한국영화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특히 100주년을 맞은 올해의 성과는 눈부시다.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 ‘기생충’의 진정한 매력이다. 고국에 돌아와 1000만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얼마 전 한국영화 최초로 골든 글로브 3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와 더불어 내년 2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기대 또한 높아지고 있으니 ‘기생충’발 뉴스는 올해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또 올해는 사상 최초로 1000만 영화 5편이 배출된 한 해였다. 1000만 영화 4편이 개봉한 2014년 이후 5년 만의 신기록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로 볼 때 2019년은 최초로 연 관람객 2억2000만 명을 돌파하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올 한 해 관객들이 사랑한 영화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우선 1000만 관객 이상을 기록한 흥행작을 놓고 보자면 ‘서민 vs 히어로’의 대결이었다. 한국영화는 곧 잘리기 일보 직전의 형사(‘극한직업’)와 백수 가족(‘기생충’)이 관객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서민층의 압승이다.
‘어벤져스:엔드게임’ ‘알라딘’ ‘겨울왕국2’ 세 편의 외국영화는 결이 전혀 다르다. 최소 왕위 정도는 있어야 주인공으로 나설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반면 올해 한국의 왕은 성적이 좋지 못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사도’ ‘관상’ 등 왕이 등장하면 승승장구하던 시절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또 하나 1000만 관객 이상의 외국영화 세 편은 모두 디즈니 영화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디즈니는 역대 최초로 전 세계 시장에서 100억달러, 한국 돈으로 12조원이 넘는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영화 상영으로 인한 수익은 케이블TV와 테마파크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승승장구하는 ‘가족영화’의 비결을 한 수 배워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올해의 키워드 중 하나는 ‘여성’이다. 한국영화, 외국영화 구별할 것 없이 여성 캐릭터가 약진하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82년생 김지영’ ‘엑시트’ ‘가장 보통의 연애’를, 외국영화로는 ‘알라딘’ ‘겨울왕국2’를 꼽을 수 있는데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가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성 감독이 대거 데뷔해 좋은 평가와 성적을 기록한 것도 올해의 수확이다. 1994년에 태어나 성수대교 붕괴를 겪은 여중생 은희의 이야기로 세계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김보라 감독의 ‘벌새’ 역시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영화 100주년 한 해의 키워드이자 의미로 기록될 것이다.
여전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 영화 흥행의 빈부격차, 성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의 문제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그러나 100년의 역사가 있었던 만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