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벤처펀드 절반이 정책자금…'나눠먹기식 배분'에 성장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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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맞은 모험자본시장▶마켓인사이트 12월 19일 오후 2시4분
(하·끝) 민간자본 유입 확대해야
시장 성장 '마중물' 역할 했지만
지역·청년 등 사회 투자 의무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면역치료제 제조업체인 에이프로젠은 지난 10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한국은 쿠팡, 우아한형제들, 무신사 등에 이어 11번째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게 됐다. 유니콘 기업은 작년 여섯 개에서 1년 만에 다섯 개 증가했다.유니콘 기업이 속출하며 국내 산업의 역동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벤처캐피털(VC)을 중심으로 한 모험자본의 역할이 컸다. VC들은 2015년 2조858억원에 머물던 신규 벤처투자 금액을 올해 4조원까지 확대하면서 국내 산업 지형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자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국내 출자자(LP)들의 무관심, 혁신을 막는 규제 등이 여전해 모험자본시장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자금 중심의 투자 한계 많아”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규 벤처펀드 가운데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성장사다리펀드) 등 정책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달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벤처펀드에 비해 정책 자금 비중이 배 이상 높다.
정책 자금은 민간 자본 유입이 더딘 상황에서 벤처투자 시장을 빠르게 성장시킨 ‘마중물’이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벤처투자 시장이 성숙해질수록 업계 발전에 장애가 되는 측면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정책 자금 출자 사업 중 상당 부분은 지역, 청년, 여성, 사회적 기업 등 ‘공공투자’를 의무화하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 ‘소수의 우수한 운용사’에 자금 투입을 집중하기보다 ‘다수의 평범한 운용사’에 자금을 골고루 나눠주는 ‘평등주의적 자원배분’도 정부 주도 사업의 고질적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국내 VC들의 건당 평균 투자 금액이 약 160만달러로 미국(1400만달러)과 중국(2100만달러)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책 자금 중심으로 벤처펀드 설정이 이뤄져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벤처투자촉진법 통과 시급국내 벤처펀드 규모가 작다 보니 국내 유니콘 기업 투자는 대부분 외국계 VC가 독식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투자한 쿠팡, 세쿼이아캐피털(미국)과 힐하우스캐피털그룹(중국) 등의 투자로 유니콘이 된 우아한형제들, 중국 텐센트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은 크래프톤 등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 벤처펀드는 평균 규모가 약 300억원에 불과해 유니콘 기업 투자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종군 한국성장금융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결국은 펀드 크기가 중요한데 정책자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연기금 및 공제회, 보험사, 은행, 투자은행, 일반 기업, 개인 자산가 등 민간 자본이 국내 모험자본 시장에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투자업계는 정쟁 등으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벤처투자촉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벤처투자촉진법은 중소기업창업지원법(창업투자조합)과 벤처기업특별법(벤처투자조합)으로 흩어져 있는 벤처투자 관련 법안을 일원화해 같은 기능의 VC가 다른 법의 규제를 받는 비효율을 제거하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