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안종범 수첩으로 진화 중인 송병기 수첩…검찰, 메모 내용 검증하려 기재부 압수수색

안종범 수첩과 닮은 꼴인 송병기 수첩
법원은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인정
송병기 수첩에 'VIP' 수차례 언급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20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울산지검으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송철호 울산시장 측근인 송병기 울산시 부시장 수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 부시장은 평소 꼼꼼한 메모로 유명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6일 송 부시장의 집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 수색해 수첩 등을 확보했다.송 부시장이 자필로 적은 이 업무 수첩에는 청와대를 뜻하는 'BH'와 대통령을 뜻하는 'VIP'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송 부시장 수첩이 국정농단 사건 당시 결정적 증거가 됐던 안종범 수첩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송 부시장 수첩에서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2017년 10월 송 시장에게 울산시장 출마 요청을 했고, 청와대가 송 시장 당내 경쟁자를 정리하려 했다는 취지의 메모가 나왔다.대통령의 출마 권유는 문제가 없지만 권유 직후 청와대가 송 시장을 지원하고 당내 경쟁 후보들을 배제하려고 시도했다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4월 당내 후보 선출 절차를 생략하고 송 시장을 단독 공천했다.

비슷한 시기 송 부시장의 다른 수첩 속 메모를 보면 청와대의 '관여' 정황이 더 짙어진다.11월 초 작성된 메모에는 '중앙당과 BH, B 제거→송 장관 체제로 정리'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민주당과 청와대(BH)가 송 시장의 유력 경쟁자인 B 씨를 '제거'하고 송 시장이 민주당 후보가 되게 할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송 시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지냈다.

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송 부시장 수첩에서는 '2017년 10월 10일 단체장 후보 출마 시, 공공병원 (공약). 산재모(母)병원→좌초되면 좋음.'이라는 메모가 발견됐다. 산재모병원은 하명수사 피해자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 공약이었다.

산재모병원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불합격한 것은 지방선거 투표일을 16일 앞둔 지난해 5월 28일이다.수첩엔 송 부시장이 송 시장과 함께 2017년 10월 12일 서울로 출장을 가 청와대 관계자와 산재모병원과 관련된 논의를 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명 수사 의혹과 관련해 어제(19일) 조사를 받은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검찰이 보여준 '송병기 수첩'에 청와대와 자신의 관계가 담겨 있고, 자신에 대해 안 좋게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송 부시장 수첩에는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송 시장 선거캠프의 움직임, 청와대 측의 조력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내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국 타당성심사과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압수수색했는데 '송병기 수첩'에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당시에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수첩이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했다.

사건 관계인들은 이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정했지만 지난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정농단 사건들의 상고심 선고 때 수첩의 증거능력을 일부 인정했다.

송 부시장 수첩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 인사들을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자체 여론조사를 하게 하고, 당시 새누리당 공천위에 친박 인사들 명단을 전달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작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