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을 깨운 '쿵쿵' 소리…광주 모텔화재 '의인' 있었나

"뭔가 두드리는 소리 듣고 깨어나니 연기 가득" 부상자 증언
대피 시설 '양호'·소방시설 '작동'…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는 없어
새벽 시간대 화염에 휩싸인 모텔에서 일부 부상자는 '쿵쿵쿵' 둔탁한 소음을 듣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대피했다. 긴박했던 상황에서 투숙객에게 위기를 알린 숨은 의인이 활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병상 증언이 나왔다.

22일 광주 북구 두암동 모텔 화재로 불에 데이고 연기를 들이마신 A(29)씨는 병원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퍼즐 조각처럼 떠오르는 기억을 토대로 대피 상황을 설명했다.

전남에 거주하는 A씨는 새벽까지 이어진 연말 모임에 참석하고 모텔에 투숙한 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A씨는 "쿵쿵쿵 문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며 "힘겨운 듯한 신음과 함께 뭔가를 치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고 말했다.

A씨가 머물던 방은 경찰에 체포된 방화용의자가 투숙했던 3층 객실과 지척이다.

자신의 방 안까지 검은 연기가 가득 들어차면서 A씨는 휴대전화나 지갑조차 챙기지 못하고 속옷 차림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의식이 아득해지던 찰나에 방문을 겨우 연 A씨는 가까스로 3층 복도까지 빠져나왔다.

A씨는 불길이 일렁이고 연기가 가득한 복도에서도 누군가 힘을 줘서 무언가를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으나 이 소리를 낸 사람이 여성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던 비상구 표지판을 발견한 A씨는 바닥을 더듬어 계단까지 이동했다.

건물 밖으로 탈출하고 나서야 '살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소방 당국의 시간대별 활동 상황을 토대로 화재 상황을 재구성하면 119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전 5시 45분이다.

선착대가 3분 만에, 현장지휘팀이 6분 만에 모텔에 도착해 5시 58분 긴급구조통제단이 가동했다.

소방관 163명, 경찰관 50명, 광주시·북구청 공무원과 가스·전력공사 직원 등 인원 267명과 장비 48대가 구조와 수습에 투입됐다.
투숙객이 단잠에 빠져있을 시간대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다수 부상자가 구조대 도착 전까지 모텔 건물에 갇혔다.

한 여성 투숙객은 4층 창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다행히 주차장 천막 지붕 위로 떨어져 심각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119구조대가 33명을 모텔 건물에서 데리고 나왔고, 20명은 A씨처럼 가까스로 탈출했다.

이 불로 1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쳐 인근 병원 8곳에 분산 이송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투숙객 중 14명은 심정지·호흡곤란·화상 등으로 긴급·응급 환자로 분류돼 치료받고 있다.

다른 18명은 비응급 환자로 분류됐고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일부 부상자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등 위중한 상태여서 사망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북부소방서 관계자는 "해당 모텔은 지난해 특별 소방조사에서 화재 대피 시설이 양호하다고 판정됐는데 비상구 표지판 등이 투숙객 탈출에 도움 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3급 특정 소방대상물이라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둔탁한 소음으로 A씨를 잠에서 깨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방화용의자인 30대 투숙객을 긴급체포해 화재 경위를 파악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