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날림·졸속' 의원입법으로 재산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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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건너뛰며 '종부세 강화' 밀어붙이는 당정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징벌적 과세’ 논란이 거센 종합부동산세율 인상을 위해 ‘의원 입법’ 방식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종부세 최고세율을 3.2%에서 4.0%로 올리는 등의 ‘12·16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를 담은 종부세법 개정안이 여당 의원 발의로 곧 제출될 전망이다.
하도 '악법' 쏟아내 OECD '입법 품질' 훈수까지
공청회·규제평가 등 최소한의 검증장치는 거쳐야
내년 종부세 과세기준일인 6월 1일까지 입법을 끝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법 개정 절차를 간소화한 의원 입법으로 결정했다”는 게 당정의 설명인데, 여러 면에서 부적절하다. 정부는 작년 ‘9·13 종합부동산 대책’을 통해 이미 종부세율을 최대 1.2%포인트나 올려 올해 종부세 징수 규모가 3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8% 급증이 예상되고 있다. 또다시 세율 인상을 강행한다면 그야말로 ‘세금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 종부세 과표기준인 공정시장가액비율도 올해 85%에서 내년에는 90%로 올릴 예정이어서 종부세액이 서너 배 급증하는 사례가 잇따를 전망이다.정부와 여당은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100만 명(올해 약 60만 명)에도 못 미쳐 조세저항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평’이라는 조세 제1원칙을 ‘99% 대 1%’ ‘90% 대 10%’의 정치적 유·불리로 접근하는 것은 심각한 세정의 궤도 이탈이다. 거래세 보유세(종부세 포함) 양도세 등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관련 세금은 ‘OECD 회원국들 가운데 2위’라는 분석이 나올 만큼 이미 충분히 높다.
실현되지 않은 평가이익에 대한 과도한 보유과세는 ‘이익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과세의 대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집값이 하락했을 때 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면 미실현된 집의 가치 상승에 대한 과세에 신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더구나 수입 없이 달랑 집 한 채 보유한 은퇴자나, 투기와 무관한 선량한 다수의 주택 보유자들이 양도세 부담에 집을 팔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세금폭탄’을 가한다면 국민과 국가 간 최소한의 신뢰조차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중차대한 이슈를 의원 입법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이 많은 만큼 전문가들 간 진지한 토의와 국회의 제대로 된 심의를 거쳐 법안이 만들어지도록 정부 입법안을 제출하는 것이 정도다. 정부 입법은 부처 협의, 공청회, 규제 심사 등 아홉 단계를 거치지만 의원 입법은 네 단계에 불과하다. 법제실 검토, 비용 추계만으로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상임위에서 의결하면 공청회도 생략할 수 있어 입법 남발로 이어질 때가 많다.
시대 변화에 무심한 ‘타다 금지법’과 면세점업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홍종학법’ 등에서 의원 입법의 폐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의원 입법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7년 5월 OECD가 의원 입법 품질 관리를 위한 국회 내 상설기구 설치를 제안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는 모습이다. 20대 국회의 규제 관련 의원 발의 법안은 3776건으로, 이미 19대 때(1335건)의 세 배다. 국회나 정부나 마치 해결사처럼 ‘청부입법’과 ‘우회입법’에 매달리는 꼼수는 이제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