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수출규제 철회 결단을"…아베 "韓·美·日 안보 공조 중요"

양국관계 개선 방안 논의
< 105개월 만에 韓·日 정상회담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샹그릴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여섯 번째이자,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린 지 15개월 만이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양국 관계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한·일 정상회담은 2018년 9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중국 쓰촨성 청두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는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서는 “7월 1일 이전으로 조속히 회복돼야 하며, 아베 총리의 관심과 결단을 바란다”고 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아베 총리도 “중요한 일·한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관계 회복 의지를 보였다. 다만 “북한 문제를 비롯해 안전보장에 관한 것은 일본·한국·미국 간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안보협력을 강조, 경제보복 철회를 우선시하는 한국과 인식 차를 드러냈다. 수출규제에 대해선 “3년 반 만에 재개된 양국 수출 관련 (국장급) 대화가 매우 유익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답했다. 회담은 예정된 30분을 넘겨 45분간 진행됐다.문 대통령은 이날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과 한·중·일 정상회의에 연달아 참석한 뒤 1박2일의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문 대통령 "수출규제 7월 이전으로 돌려야"
아베 "당국 간 대화로 풀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4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한 대화’를 강조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시작한 두 정상은 회담 말미에 “앞으로 자주 만나자”며 추가 회동 가능성도 시사했다.
< 손 맞잡은 韓·中·日 정상 >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국제회의센터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리커창 중국 총리(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손을 잡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대화 통한 해결’ 공감대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시작된 양국의 긴장 관계는 일본의 지난 7월 수출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을 둘러싼 갈등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지난달 4일 태국에서의 ‘번개 정상회동’ 이후 더 이상의 관계 악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관계 변화를 예고했다.

이날 먼저 발언에 나선 아베 총리는 “중요한 일·한 관계를 개선하고 싶고, 오늘은 아주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운을 뗐다. 이에 문 대통령은 “양국 간 변화를 기대하려면 솔직한 대화를 하는 것이 철칙”이라고 답했다. 이어 “일본은 교역과 인적 교류에서도 더욱 중요한 매우 큰 동반자”라며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 역시 수차례에 걸쳐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며 이전과 달라진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제징용 해법 찾을까비공개로 전환한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직설적으로 수출규제 해소를 촉구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7월 1일 이전으로 회복되는 데 아베 총리가 관심을 두고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3년 만에 이뤄진 (국장급) 수출 관련 대화가 매우 유익하게 진행됐다고 들었다”며 “앞으로 수출당국간 대화를 통해 풀어가자”고 답했다. 보복 철회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이나 구체적인 시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청와대는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강제징용 해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고 대변인은 “강제징용과 관련한 양국의 입장 차이를 확인했지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는 공감했다”며 “정상 간 만남을 자주 갖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정상 간 추가 회동을 통한 징용 문제 해법 등이 논의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오카다 나오키 일본 관방 부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상대(한국)로부터 새로운 제안은 없었다”며 “다만 아베 총리가 한국 법원의 판결로 압류돼 있는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피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은 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하면서 안보 분야에 방점을 뒀다. 아베 총리는 “양국은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이고 북한 문제를 비롯해 안전보장에 관한 문제에서 일·한, 일·한·미 간 공조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지소미아’ 문제는 여전히 평행선

두 정상이 현안을 두고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낸 점을 고려할 때 악화일로를 걷던 양국 관계가 단시일 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수출규제를 완전히 원상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지소미아 종료를 연기하는 방식의 ‘일괄 타결’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안보상 이유를 내세워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며 지소미아의 확실한 연장을 우선시하고 있다. 수출규제 조치의 단초가 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급격한 방침 선회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두 정상이 “자주 만나자”는 데 공감하면서 “인적 교류 확대를 통해 보다 많은 국민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경주하자”고 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아베 총리도 회담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는 이웃이고 서로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강조했다.두 정상은 최근 한반도의 엄중한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납북자 문제에 대한 우리 측의 지지와 노력을 당부했으며, 문 대통령은 일본 측 의견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청두=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