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헬스케어가 한국서 '혁신의 무덤'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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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의료기술 내놔도 규제 넘느라 날 샌다헬스케어업계에서 한국은 ‘혁신의 무덤’으로 불린다. 첨단 기술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혁신 제품을 개발해도 푸대접받는 일이 많아서다. 의료진의 질병 진단을 보조하는 의료 인공지능(AI) 제품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AI, 3D(3차원)프린팅 등을 활용한 ‘혁신적 의료기술의 요양급여 여부 평가 가이드라인’을 26일 마련했다. AI 기반 의료기술은 기존 의료행위가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진단 정보를 제공하거나 고가의 의료행위를 대체할 수 있어야 건강보험공단에서 추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의료영상에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의심 부위를 표시하거나, 병변 의심 부위를 확인해 진단명을 제시하는 수준으로는 추가 급여를 받을 수 없다.
의료계와 헬스케어업계에서는 혁신성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의료 AI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 AI는 진단 정확도를 높여 의료 질을 개선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며 “이번 가이드라인 때문에 일선 병원이 의료 AI 도입을 꺼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고도 규제 탓에 출시조차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환자가 먼 거리에 있는 약사와 통화해 약을 살 수 있는 화상투약기를 개발한 쓰리알코리아는 제품을 개발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약사법 등에 막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간편하게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소비자 의뢰 기반 유전자검사(DTC) 서비스 업체들도 해외에는 없는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에서는 피부 탈모 등 12개 항목에 대한 검사만 허용돼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는 질병에 걸릴 확률도 유전자검사로 알아볼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도 헬스케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내에서 의료기기를 내놓으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여부 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1년도 안 걸리는 허가 절차가 국내에서는 2~3년 넘게 소요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글로벌 기업을 유치해도 모자랄 판인데, 우리나라는 과도한 규제로 헬스케어 기업을 내쫓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유/전예진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