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넉 달 앞두고 논란 커지는 '민식이법'…"학생 안전 우선" vs "과실 운전자 처벌 가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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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어린이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의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일명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어린이 보행 안전을 보장하자는 입법 취지와 달리 과잉처벌 규정으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법 개정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만 6만 명이 넘었고, 맘카페 등 커뮤니티에선 아이를 차로 통학시키는 ‘스쿨맘 독박법’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민식이법 반대' 국민청원 쇄도
민식이법 개정 청원 6만여 명 동의충남 아산시에서 지난 9월 김민식 군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이 국회를 통과됐다. 시행 넉 달을 앞둔 민식이법은 두 개의 법안으로 구성됐다. 스쿨존에 신호등 및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이 담긴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제한속도 시속 30㎞를 초과하거나 안전 운전 의무를 소홀히 해 13세 미만 어린이를 숨지게 하면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상해를 입히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는 내용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은 운전자가 제한속도를 지켜도 스쿨존에서 사고가 나 어린이가 다치거나 숨지면 ‘안전 의무 소홀’을 이유로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중처벌 논란은 법안 통과 직후부터 튀어나왔다.청와대 홈페이지엔 ‘민식이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운전자만을 엄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글이 올라온 지 17일 만에 6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 마포구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직접 운전해 통학시킨다는 직장인 박모씨(40)는 “차끼리 부딪혀도 무과실로 판정받기 어려운데 보행자 사고에서 운전자가 무과실 판정을 받을 수 있겠냐”며 “학교에 애들을 데려다주는 학부모 또는 스쿨버스 기사, 학교에 차로 출퇴근하는 교사 등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안전 보장이 최우선
민식이법의 처벌 규정이 헌법상 최소침해원칙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운전자의 과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음주운전 사망사고와 똑같은 형량인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교통사건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무조건 3년 이상의 실형을 규정한 것은 다른 법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과실 정도를 따져 피해자의 과실이 큰 경우엔 사망 사고라도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교통 약자인 어린이의 보행안전을 지키려면 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스쿨존에서라도 어린이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입법 취지를 고려해 법을 운용하면 무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법무법인 은율의 김민규 변호사는 “민식이법으로 운전자들은 앞으로 스쿨존에서 운전할 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됐다”며 “판단 능력이 완벽하지 않아 교통 약자인 어린이를 보호하자는 법을 시행 이전부터 흔드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 운전 의무의 판단 기준은 법 시행 이후 판례 등으로 명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