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부터 기부까지 내 가수 직접 챙긴다"…'프로슈머'로 진화하는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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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왁자지껄팬덤 문화가 진화하고 있다. 팬들은 더이상 스타의 노래나 연기를 단순히 즐기는 데 만족하지 않고 홍보부터 기부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2000년대 콘서트장에서 색풍선을 흔들었던 ‘오빠부대’가 스타를 소비하는 ‘컨슈머’였다면 2010년대 팬덤은 스타 홍보에 나서면서 입맛대로 소비하는 ‘프로슈머’(생산적 소비자)로 거듭나고 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의 팬카페인 ‘비티쿠’는 지난 24일 ‘방탄소년단 I NEED U, 2억뷰 돌파’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I NEED U 뮤직비디오가 발매 2년만에 유튜브 조회수 2억회가 넘어섰다는 내용이 골자인 이 자료에는 이 영상이 국내 가수 영상 가운데 57번째로 조회수가 높다는 사실 등의 분석까지 담겨 있다. 이 카페는 지난달 이후 두달 간 다섯 번의 보도자료를 냈다. 기획사가 하던 홍보 기능을 팬덤이 직접 수행하기 시작한 셈이다. 정아름 중국 시추안대 교수는 “지금 시대의 팬 활동은 1세대, 2세대 때 팬과는 전혀 다르다"며 "오늘 날 팬덤의 활동은 굉장히 복잡하고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데 대부분의 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확인하고, 계정을 팔로우하며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아티스트들 역시 이러한 플랫폼을 활용해 팬들이 아티스트들과 직접 소통한다는 느낌을 주고, 이것이 이미지 생성과 소비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팬덤이 프로슈머로 본격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방영한 Mnet ‘프로듀스 101’ 때부터다.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로 참여케 해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멤버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이는 팬덤에 기존에 없던 주체성을 마련해주며 아이돌 산업의 변화를 이끌었다. 기획사에서 내놓는 홍보수단을 보고 만족하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SNS 등을 등에 엎고 직접 그룹을 홍보하고 성장하는 ‘프로듀싱’을 시작한 것이다. 프로슈머로 거듭난 팬덤은 스타를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대표적인 것이 대중교통을 활용한 광고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 등 기념일엔 지하철 등의 광고판을 통해 널리 알리기도 한다. 지하철 광고에서 팬덤들은 ‘큰손’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17년 1~8호선 지하철역에 걸린 아이돌 광고는 1038건으로 2015년 231건보다 2년만에 4배 가량 늘었다.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가수를 글로벌 스타로 만들기 위해 가사를 외국어로 번역해 돌리거나 방송사에 노래를 신청하는 운동도 벌인다. 방탄소년단 공식팬클럽 아미는 노랫말을 영어나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해 SNS에 올려 뜻을 공유했다. “노랫말이 가슴에 와닿기 때문에 팬이 됐다”는 외국 팬들의 응답이 많은 이유다. 미국 아미들은 50개 주에서 라디오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힘을 모았다. 각 지역 방송사를 조사해 공유한 뒤 방탄소년단 노래를 틀어달라고 전화와 엽서 보내기 운동을 벌였다. 스타들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팬덤들의 기부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워너원 팬들은 멤버 강다니엘, 박지훈의 이름으로 유기견 보호센터 및 나눔의 집, 어린이병원 소아병동 등 다양한 단체에 1000만원 상당의 돈을 기부했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도 지난해 100만달러를 이틀 만에 모금해 기아에 신음하는 아동을 돕도록 유니세프에 전달했다. 팬덤은 가수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하기도 한다. 지난 9월에는 방탄소년단 RM 생일을 맞아 팬들이 그의 이름을 딴 숲을 잠실 한강공원에 조성했다. 브라질에는 ‘서태지 숲’이 2012년 완성됐고, 중국에는 현지 팬들이 만든 ‘신화 숲’이 있다.
루티엔 홍콩침례대 박사과정생은 “K팝에서 팬덤들은 하위문화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이런 지형을 확대하고 있다"며 "문화 매개자로써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K팝은 단순히 쇼 비지니스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자체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