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편치 못한 베네수엘라인…극심한 경제난에 장례비 부담

관 대여하거나 가구를 관으로 개조하기도…귀중품 노린 도굴도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가 오래 이어지면서 국민의 삶은 더없이 피폐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난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이후에도 베네수엘라인을 괴롭히고 있다.

27일(현지시간) AP통신은 많은 베네수엘라 빈곤층에게 죽음은 큰 경제적 부담이 됐다고 전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상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가족이나 친척의 죽음은 슬픔과 동시에 걱정을 가져다준다. AP에 따르면 시신을 운구하고 관과 장지를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수백 달러에 달하지만, 다수의 국민은 월 3달러(약 3천500원)가량의 최저임금으로 생활한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관을 대여해 쓰거나 목제 가구를 관으로 개조해 쓰기도 하고, 장의사를 고용하지 못한 채 직접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중심지였던 마라카이보는 유가 하락 등으로 인한 경제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지역 중 하나다. 오랜 경제난 속에 마라카이보의 장례업에도 변화가 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장례식장들은 관 대여사업을 시작했다.

100∼300달러가량 하는 관을 살 수 없는 빈민들은 50달러에 관을 빌려 장례를 치른 후 시신을 화장하고 관을 반납한다. 목제 가구를 만들던 세르히오 모랄레스는 가구용 목재를 활용해 100달러 미만의 저렴한 관을 만들어 거리에 내놓고 판다.

시민운동가인 카롤리나 레알은 장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이웃 두 명과 팀을 만들어 장례지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목수인 이웃 아르투로 비엘마가 유족의 집에서 쓸만한 목제 가구를 찾아 관으로 개조하고, 장례식장 운전기사를 하던 로베르토 몰레로가 어깨너머로 본 기술로 시신의 방부 처리를 한다.

몰레로는 시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꿰매주기도 한다.

레알은 시 당국에 장지 제공을 요청한다.
경제난 속에 죽음의 방식도 더 비참해졌다.

늘어난 폭력 속에 희생되거나 에이즈, 결핵 등의 치료를 받지 못해 죽기도 하고, 영양부족이나 심지어 버려진 음식을 먹다 식중독으로 죽기도 한다.

레알은 바쁜 달엔 한 달에 12번의 장례도 대신 치러주기도 했다며 "빈민 지역이 살아있는 지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장례가 끝난 후에도 빈곤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는다.

도둑들이 혹시 모를 귀중품을 찾아 무덤을 파헤치기도 하고, 돌볼 여유가 없는 유족들이 무덤을 버려두기도 한다.

돈이 없어 비석을 세우지 못한 유족은 폭우라도 온 다음엔 공동묘지 내 가족의 무덤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고 AP는 전했다. 가난한 베네수엘라인들에겐 존엄한 삶만큼이나 존엄한 죽음도 어려운 일이 된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