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업인들의 조언 "단순 사고도 CEO 처벌…한국만의 독특한 규제가 기업 성장 기회 가로막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가 한국의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한국 정부에 대한 건의내용을 담은 ‘ECCK 백서 2019’를 발표하는 자리에 참석한 유럽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한국의 독특한 규제가 외국 기업은 물론 한국 기업의 성장기회마저 놓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지난해 ECCK가 내놓은 건의 사항은 180개로 전년(123건)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헬스케어 분야(34개)가 가장 많았다. 줄리엔 샘슨 ECCK 헬스케어위원장(GSK코리아 사장)은 “기업의 혁신기술을 폭넓게 인정하는 중국은 약품 개발을 위한 임상연구가 지난해(1~11월) 658건에 달했지만, 한국은 208건으로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화학 분야(31개)의 건의 건수는 전년(8개)의 네 배가량으로 늘었다. 외국계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인 유럽연합(EU)보다 한국의 환경 규제가 더 엄격하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황지섭 ECCK 화학위원회 위원은 “연구개발(R&D)용 화학물질 성분은 공개돼선 안 되는 극비 사항”이라며 “한국에서는 기존에 쓰지 않던 신규 화학 물질을 1㎎이라도 사용하면 성분을 제출하도록 하는데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1t 미만의 R&D용 물질에 대해서는 따로 규제하지 않는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도 수시로 한국 정부에 규제 개선을 건의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만의 CEO 리스크’다. 일상적인 경영 활동 중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실수나 단순 사고 등까지 CEO 소환 및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10개 경제·노동·환경 관련법의 357개 벌칙 조항 가운데 315개(88.2%)가 법 위반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업주(대표이사·CEO)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두고 있다.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한국에서는 수많은 임직원 중 단 한 명이 잘못해도 CEO가 책임져야 한다”며 “한국에서 사업하는 CEO에겐 너무 큰 위험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