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 폭격 '역풍'…반미 기류 고조(종합)

이라크 정부 "주권 침해" 반발…의회 최대정파 "미군 철수해야"
"반정부시위 분위기 '반이란'→'반미' 변화" 전망도
美 "미국인 보호 위한 방어 작전…이라크, 미군 보호책무 완수 못해"
미군이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하시드 알사비, PMU 또는 PMF) 기지를 폭격하자 이라크 정부와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며 반미 기류가 강하게 일고 있다. 미국은 이에 대해 이번 공습이 미국인을 보호하려는 '방어 전투'라며 정당성을 역설하는 등 양측 사이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30일(바그다드 현지시간) "미군의 공격은 위험한 결과를 낳는 용납할 수 없는 악의적 공격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압둘-마흐디 총리는 "미국의 공격은 이라크를 미국과 이란이 벌이는 대리전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미군은 이라크 국민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우선해 행동해 주권을 침해했다"라며 "이번 공격으로 이라크는 주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관계와 안보, 정치적 틀을 재검토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라크 정부는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를 불러들여 공식 항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외무부는 "하시드 알사비는 이라크의 국가 군대이며, 이라크 군 조직의 일부로 이라크군 총사령관 휘하에 있다는 점을 재천명한다"며 "이번 공격은 노골적인 이라크 주권 침해이며 규탄받을 행위로, 국가간 관계를 규정하는 모든 규범과 법령이 배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한 알사이룬 정파의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끝내기 위해 모든 정치적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미군을 쫓아내기 위해서라면 의회 내 경쟁 세력인 친이란 정파 파타 동맹과도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알사드르는 강경 시아파 성직자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과거에는 이란과 관계가 우호적이었지만 이라크에서 독자 정치·종교 세력을 구축해 미국, 이란 등 외세의 개입을 거부하는 노선을 굳혔다.

동시에 알사드르는 "시아파 민병대도 이라크에 대한 (외세의) 공격에 빌미가 될 수 있는 무책임한 행동을 삼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라크에서 가장 존경받는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도 미군의 폭격을 강하게 규탄하고 "이라크가 다시는 역내, 국제적 분쟁의 장이 되거나 외세가 내정간섭 하지 않도록 이라크 당국이 그런 공격을 금지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아야톨라 알리의 입장은 이라크의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친다.
미군에 폭격당한 시아파 민병대 카티이브-헤즈볼라의 창설자로 시아파 민병대에 영향력이 큰 자말 자파르 무함마드 알리 이브라히미(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는 29일 "순교자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매우 가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조직은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보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은 현재 5천200명 정도로, 여러 군기지에 분산돼 주둔하는 만큼 시아파 민병대가 기습 공격하면 완전히 방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 대부분의 예상이다.
미국의 숙적 이란은 이번 미군 공격이 '테러'라며 성토했다.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이라크 영토와 이라크군(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미국의 침범은 테러리즘의 명확한 사례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중동의 안보와 안정을 불안케 하는 미군은 점령을 멈추고 떠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대테러전을 수년간 수행하는 하시드 알사비를 공격함으로써 지나칠 정도로 테러리즘을 도왔다"라며 "다른 나라의 주권이나 자주엔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은 이번 테러 지원 행위를 책임져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를 직접 지원하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런 거대한 범죄를 보복하는 것은 이라크의 당연한 권리다"라며 "주권 국가라면 자국의 젊은이가 외국 군대의 표적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격을 촉구했다.
이번 미군의 폭격은 이라크에서 석 달째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의 향방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정부 시위가 이란에 우호적인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 이란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이슬람국가(IS) 소탕전에 공이 큰 시아파 민병대를 미국이 공격하면서 기류가 반이란에서 반미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바스라, 나자프 등 이라크 주요 도시에서는 30일 미국의 폭격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러시아 역시 미국의 폭격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이번 공격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만 "이란과 그의 대리자를 겨냥한 미국의 중요한 공격을 수행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라고 호응했다.
앞서 27일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키르쿠크의 군기지에 로켓포 30여발이 떨어져 미국 민간인 1명이 죽고 미군이 다치자 미국은 이 공격의 배후를 카타이브-헤즈볼라로 지목하고 29일 이 조직의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지대 기지 5곳을 전투기로 폭격했다.

공습으로 민병대 전투원 25명 이상이 죽고 50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번 공습작전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도, 보복 공격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9일(미국동부 현지시간)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공격이 "미군과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전투'"라고 정당성을 역설하며, "미국인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단호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솅커 미국 국무부 근동 담당 차관보는 "우리가 미국인의 생명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분명한 메시지를 주려면 주요한 목표물을 타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공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가 몇달간 '자제' 끝에 이란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미군과 외교관을 보호 책무를 다하지 못한 이라크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취재진에 "우리는 (미국인에 대한) 위협에 관해 이라크 정부에 자주, 강력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며, "우리는 (키르쿠크 기지) 피격에 대응 행동에 나서겠다는 점도 이라크 정부에 틀림없이 이야기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시아파 민병대의 보복 공격 시도가 있으리라고 예상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익명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한 미군 관계자는 "보복공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다른 미군 관계자는 보복공격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