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경 신춘문예] 서른 살에 비로소 다시 잡은 펜…따뜻한 글 쓰는 수필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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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 조혜은 씨“수필은 제 자신을 비울 수 있게 해주는 존재예요. 수필을 쓸 때만큼은 제게 비움의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감정적 기분이 들 때마다 수필은 최대한 이성적 상태에서 글을 쓰게 해줍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며 차분해질 수 있게요.”
2020 한경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새’로 당선된 조혜은 씨(33)는 수필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조씨는 창원의 한 지방신문 편집부에서 교정·교열과 편집을 맡고 있는 5년차 편집기자다. 부산외대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뒤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가 신문사로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조씨는 “기사는 대체로 딱딱한 문장들이라 글쓰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 건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문장을 계속 볼 수 있고 글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만으로도 삶에서 글 쓰는 비중을 늘려가고 싶었던 욕구를 충족해줬다”고 말했다.그가 수필을 처음 접한 때는 17년 전이다. 열다섯 살이던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수필을 써 해양수산부 장관상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수필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게 늪이었어요. 그 상을 타지 않았다면 이런 고단한 길로 들어서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제게 글이 없으면 안돼요. 진부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전 글 쓸 때 제가 살아있음을 느껴요.” 20대 끝이었던 29세에 그는 글쓰기가 겁나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30세가 되자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펜을 잡았다.
조씨는 당선작 ‘새’에서 자기 모습을 새에 투사하고, 새를 보며 평안을 얻는 자신을 통해 이렇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있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는 “왜 하필 새를 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새가 아닐 이유도 없다”며 “내가 새를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처럼 고단한 삶 속에서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여유를 갖고 관대한 마음으로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필은 연륜이 묻어나는 40~50대 문학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조씨는 “물론 연세가 있는 분의 글 중에는 삶의 깊이를 담아낸 문장도 있지만 수필은 시니어 문학이라고 치부하기엔 아까운 분야”라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겪을 수 있는 감정과 생각도 다양하고 깊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세대가 자유롭게 접근해 즐기는 장르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이번 당선으로 그동안 홀로 읽었던 글들을 세상 앞에 내놓을 수 있게 된 소감을 묻자 그는 수줍게 입을 열었다. “당선 통보를 받자마자 ‘진짜 내가 글을 써도 되나’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책임감도 커졌어요. 더 열심히 읽고 많이 써야겠죠. 그럼에도 수필을 계속 쓰게 되는 이유는 내가 누군지 내 안에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
어떤 수필가가 되고 싶을까. 조씨는 주저 없이 박금아 작가를 꼽았다. “세상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지만 수필은 그중 일부분이라도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게 해줘요. 그분 작품을 읽으면 담백하면서도 마음이 녹아드는 느낌이 듭니다. 특별한 교훈을 주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살아온 것에 대한 느낌을 옆에 있는 친한 누군가에게 들려주듯 전달해 마음을 편하게 해주거든요. 그분을 따라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젊은 세대부터 윗세대까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따뜻한 글을 쓰는 수필가가 되고 싶습니다.”새를 바라보다, 글을 썼다…비로소 우린 마주본 듯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로소 마주봄의 순간.’새를 보는 것은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다. 소통이 불가능하고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때때로 나는 새를 볼 때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주변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들이다. 나도 안다. 새를 보는 것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자극점도 없고 구미를 당길 만한 거리도 없다. 하지만 덮어두고 지루하고 따분하게 여기기엔 너무나 살아있지 않나. 살아 흘러넘친다. 명백히 살아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그것들을 볼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
얼마 전 새를 보러 갔다. 자꾸만 흘러넘치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였다. 쉬이 비워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꾹꾹 눌러 담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힘이 들었다. 새를 보는 일이 힘에 부쳤다. 글을 쓰는 것과 새를 보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차오른 것들이 깃든 자국을 남길 때 마음의 생채기가 하나둘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썼다. 묵묵히. 그러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하기도 한다. 기적이라고 믿는 순간. 지금 기분이 꼭 그렇다. 늘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새와 눈이 마주친 기분. 글을 써 온 이래로 비로소 우리가 마주본 듯하다. 심사위원과 가족들, 그리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 조혜은 당선자 약력 △1987년 인천 출생
△부산외국어대 영어학과 졸업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